세계 최고 ‘노인국가’인 일본에는 애완동물이 참으로 많다. 일본페트푸드협회는 애완용 개·고양이 수가 2000만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주택가나 공원에 가면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수가 고령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나온 개나 고양이들 중에도 나이가 많이 들어 움직임이 둔한 동물들이 많이 보인다. 사람은 물론 애완동물까지 고령화하는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일본인 평균기대수명은 남성 80.21세, 여성 86.61세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5.9%에 이른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로 이미 접어든 것이다. 애완동물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예전에는 8~9살 정도였던 개의 평균기대수명은 실내사육이 늘고 의료·사육기술이 발달하면서 14살 이상으로 늘어났다. 열 살 넘는 고령 개·고양이 비율이 이미 4분의1을 넘으면서 ‘애완동물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고바야시 가즈오(78·왼쪽)와 그의 부인 사치코(71)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16살짜리 애완견 세피아(맨 왼쪽 개)와 9살이 되면서 노화가 본격화된 이치고(가운데), 레오 등 3마리의 애완견을 안고 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체력이 한계에 이른 노인들이 함께 늙어가는 개와 고양이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늙은 개나 고양이를 돌보느라 애쓰는 노인들을 찾아가봤다.
■사람과 동물 사이 노노개호(노인 간 돌봄)
도쿄(東京)도 가쓰시카(葛飾)구의 한 단독주택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애완견 2마리가 다가와 펄쩍펄쩍 뛰면서 반긴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든 9살 토이푸들 ‘레오’와 같은 나이인 치와와 ‘이치고’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친밀감을 표시하곤 한다고 집주인 고바야시 가즈오(小林一男·78)가 설명했다.
그때 레오와 이치고의 틈바구니에서 뒤척이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낯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바로 주저앉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방향감각도 없어서 보는 사람까지 불안했다. “16살 우리집 장남 ‘세피아’예요. 요크셔테리어종이고요. 백내장 등 안과질환이 심해 두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 다리 근육이 약해져서 저래요. 그래도 손님이 반가운 모양이네요.”
평균 수명이 14살 정도인 애완견의 경우 나이가 16살을 넘었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80살에서 최고 100살에 이른 것으로 보면 된다.
고바야시의 일과는 그의 표현대로 ‘아들 3형제’와 함께 시작돼 그들과 함께 끝난다. 그가 키우는 애완견은 모두 숫놈이다. 부인(71), 직장생활을 하는 딸(49) 등과 함께 사는 고바야시는 16년전 세피아를, 9년전 레오와 이치고를 가족으로 맞아들였지만 자신과 개들이 함께 늙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어요. 나나 개들이나 언제까지나 건강할줄 알았죠.”
16살짜리 요크셔테리어종인 세피아가 고바야시 가즈오의 집에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피아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데다 다리 등의 근육이 쇠약해져 혼자서 생활하기 어렵다.치아가 모두 빠져 혀도 밖으로 삐져나와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고바야시 부부의 생활은 늙은 세피아와 레오, 이치고를 돌보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걷지도 못하는 세피아는 부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세피아는 5~6년전부터 백내장을 앓았지만 늙은 개를 마취한 뒤 수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 그냥 키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하는 일은 세피아의 기저귀를 풀어주는 것이다. 건강할 때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렸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개가 잠들기 전 꼭 일회용 기저귀를 채운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와 물을 챙겨주고 정해진 날짜에 목욕을 시켜주는 것도 고바야시 부부가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고바야시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갈수록 늘어나는 애완견 치료비다. 8만엔(약80만원) 정도의 연금과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알뜰살뜰 살고 있는 부부가 매달 애완견 치료에 쓰는 돈은 평균 3만엔(약 30만원)에 이른다. 고바야시는 요즘 레오와 이치고에게 운동을 시키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신세가 된 세피아의 사례를 통해 애완견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바람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애완견 3마리 모두의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놈들이 떠나야 마지막까지 보살펴줄 수 있으니까요. 지금 형편으로는 애완견 요양시설에 맡길 수도 없고, 딸에게 짐을 남길 수는 없잖아요.” 부인 사치코(早智子)는 “사람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지만 애완견은 부모(주인)보다 먼저 죽는 것이 효도”라고 말했다.
고바야시 사치코(71)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16살짜리 애완견 세피아를 안고 있다.
■애완동물 전문 요양시설도 ‘북적’
“미안하지만 이제 우리는 떨어져서 살아야 겠구나. 내가 더 이상 너를 돌봐줄 수 없게 됐다.”
도쿄에서 혼자 사는 이와이 준코(岩井順子·67·가명)는 얼마전 애완견을 동물 전문 요양시설에 맡겼다. 무릎과 허리가 불편해 걷기조차 쉽지않은 이와이가 14년 동안 가족처럼 키워온 개와의 이별을 결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시로 짖어대는 등 치매 증상을 보이는데다, 개가 여기저기 아파하고 있어 혼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이가 개를 위해 요양시설에 매달 내는 돈은 월 7만7000엔(약 75만원)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그는 “사실 부담스러운 액수이지만 수의사를 비롯해 전문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말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결정했다”면서 “노환이 심각한 사람이 비슷한 처지의 개를 돌보면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애완동물 전문 요양시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역시 사람과 동물의 ‘동반 고령화’ 탓이다. 특히 독신으로 살면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던 사람이 질병으로 쓰러져 불가피하게 전문시설을 찾는 경우가 많다. 수요가 늘자 대기업까지 애완동물 요양시설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그룹은 지난해 지바(千葉)시의 대형 쇼핑몰에 수영장과 체육관까지 갖운 애완견 요양시설을 열었다. 쇼핑몰 안에 있는 동물병원의 수의사가 24시간 대기하며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24시간 누워만 있는 개나 고양이의 경우 2시간에 한 번씩 눕는 방향을 바꿔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 이용 요금은 체중 5㎏ 미만인 애완동물은 10만엔(약 100만원), 15㎏ 미만 15만엔(약 150만원), 15㎏ 이상 20만엔(약 20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돌보는 고령자들에게는 애완동물 치료비 부담이 크다. 애완동물보험을 취급하는 한 기업의 조사결과, 2009년 평균 3만9000엔(약 39만원)이던 애완동물 1마리의 연간 치료비가 지난해에는 7만5000엔(약 75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동물이 늙어가면서 복합적인 질병을 앓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완동물보험에 가입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일본의 애완동물보험 가입 건수는 2009년 40만건에서 지난해 96만건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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