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를 못 먹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데….”
장어가 사라질 수도 있게 됐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의 탄식이 길어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장어를 잘도, 그리고 많이도 먹는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장어를 신성한 물고기로 여겨오면서 장어 관련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어떤 지역에서는 장어를 신이 보낸 사신이라며 떠받들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논농사가 시작된 기원전 3세기 야요이(彌生)시대부터 장어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장어요리는 우리나라의 보신탕처럼 보양식으로 알려져있어 여름철에 특히 인기가 높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사시사철 장어요리를 즐긴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최근 잇따라 전해진 소식은 말 그대로 충격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6월 일본 장어를 멸종위기종(레드 리스트) 가운데 멸종 위험이 두번째로 높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할 위험성이 높은 종’으로 판정했다. 지난 17일에는 미주대륙 등에서 서식하는 미국 장어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면서 이러다가 전세계의 장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장어에 이어 미국 장어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될 정도로 장어가 사라지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남획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천과 바다 등 서식지 환경이 악화되고 최근 해류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장어 감소의 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장어 남획의 ‘1등 원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장어소비 대국’ 일본이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1년 동안 소비하는 장어(약 3만2600t)의 56%를 외국에서 수입해 충당하고 있다. 중국·대만·한국·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 아시아지역 국가는 물론 프랑스·스페인·덴마크·미국·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장어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들어오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장어의 70%가 일본으로 수입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전 세계 식용 장어의 99%가 양식된 것이라는 점이다. 양식 장어는 100% 자연산 치어(稚魚·알에서 깬 어린 물고기)를 키워낸 것이다. 장어는 아직까지 알 단계에서부터 키워내는 ‘완전양식’이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양식 장어가 소비된 수 만큼 자연산 장어가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량소비에 따른 남획은 결국 전 세계 장어 치어의 감소를 부른다. 일본 연안에서 잡힌 장어 치어는 50년전 최고 200t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간 3~6t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일본·중국·대만이 국제적으로 장어보호 관리체제 구축을 협의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4개 나라는 지난 9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국제협의회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장어의 남획 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하고 양식장에 공급하는 치어의 양을 20%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그러나 많은 국가의 양식산업과 식문화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수입산 치어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장어 양식산업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긴장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치어 공급량이 줄어들면 장어 출하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바로 가격 상승 등의 여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어요리를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로 치켜세우기까지 하는 일본인들은 “이대로라면 일본의 장어 식문화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일 낮 일본 도쿄(東京) 도심인 지요다(千代田)구 오테마치(大手町)의 한 장어요리집 앞에서 만난 50대 직장인은 “장어가 빠진 일본의 식문화는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혹시 장어를 먹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즘 더 자주 여기를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장어 세 토막을 도시락 속의 밥 위에 올려놓은 ‘장어덮밥’을 점심메뉴로 내놓고 1650엔(약 1만6500원)을 받고 있는 이 요리집은 요즘 점심시간마다 손님으로 자리가 꽉 찬다. 2300엔(약 2만3000원)이나 3100엔(약 3만1000원) 하는 ‘특제장어덮밥’을 주문하는 손님도 많다. 장어 가격이 더 비싸지거나, 아예 장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먹어두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현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어라는 어종을 지켜내면서도 일본 고유의 식문화를 지켜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저가 장어가 일본 전국에서 대거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장어자원이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다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요즘 장어덮밥 등의 장어요리가 외식체인은 물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까지 저가에 팔려나가고 있다. 일부는 개당 500엔(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손님을 맞기도 한다.
이시모토 준코(石元淳子) 우송대 외식조리학과 교수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장어는 고급요리에 속해 서민들이 쉽게 먹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대중요리가 됐다”면서 “보다 고급화된 장어요리를 개발해 보급한다면 일본 고유의 식문화를 지켜내면서도 장어의 소비량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완전양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장어 치어의 국제적인 유통량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조치가 선행돼야만 장어 자원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래와 참치까지...일본인이 먹는 것은 모두 위험?
‘고래, 장어에 이어 참치까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난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총회에서 태평양 참다랑어(참치)를 새롭게 멸종위기종(레드 리스트)으로 지정했다. 태평양 참다랑어는 초밥·회 등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는 어류로, 일본이 세계 최대의 소비국이다. IUCN은 태평양 참다랑어를 멸종위기종 3등급 중 멸종 위험이 그나마 가장 낮은 3단계에 올려놨다.
이로써 이미 멸종위기에 몰려 국제포경위원회와 각국의 환경단체 등의 보호대상이 되고 있는 고래와 지난 6월 IUCN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일본 장어를 포함시키면 일본인이 즐겨먹는 ‘3대 어류’인 장어·고래·참치가 모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셈이다.
태평양 참다랑어에 대한 IUCN의 멸종위기종 지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워싱턴조약(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 동물의 국제 거래를 규제하고 야생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 조약)의 수출입 규제 대상을 결정할 때 IUCN의 멸종위기종 지정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에 향후 태평양 참다랑어에 대한 수출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 가능성이 높다.
태평양 참다랑어가 멸종위기 논란에 휩싸이자 일본 국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쿄(東京)에서 사는 70대 남자는 “일본인들은 참치가 없는 초밥이나 회 요리는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어족자원을 보호하면서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찾지 않는다면 일본의 식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예로부터 단백질 공급원으로 즐겨 먹어온 고래 역시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 3월 남태평양에서 조사포경을 해온 일본에 “더 이상은 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리는 등 국제사회가 일본을 겨냥한 고래보호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조사포경은 고래의 서식상태 등을 알아보기 위한 포경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일본이 ‘조사’를 전면에 내세워 잡아들인 고래를 식용으로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ICJ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내년부터 조사포경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하는 등 고래잡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15년부터 12년 동안 진행하게 될 일본의 조사포경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고래를 잡아 그 고기를 거래하기 위한 ‘상업포경’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전양식’이 불가능한 신비의 장어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어류 양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참치 양식을 성공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필요한 물고기는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정신으로 어류 양식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류로 일컬어지는 장어가 이런 연구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장어 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장어를 산란시킨 뒤 그 알을 부화시켜 키워내는 ‘완전양식’이다. 그러나 최첨단 양식기술을 자랑하는 일본도 아직까지 장어에 대한 완전양식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나라는 하천 등의 장어 치어를 잡아다 키워내는 수준의 ‘부분양식’에 머무르고 있다.
이유는 수수께끼 속에 빠져있는 장어 식생이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어종인 장어가 어디에서 알을 낳는지조차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이다. 오랜 세월 장어연구를 지속해온 일본의 도쿄(東京)대 해양연구소와 수산종합연구센터가 2009년 세계 최초로 장어의 알을 채취하는데 성공한 것이 그나마 최근의 가장 큰 연구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진은 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괌 인근) 앞의 수심 3000~4000m 바닷속에서 장어의 알을 채취했다. 연구진은 태평양에서 부화한 장어 치어가 해류를 따라 아시아로 와 일본 등의 하천과 호수늪지에서 성장하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 산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연구 이전에는 홋카이도(北海道)대학 연구팀이 1979년 장어로부터 채취한 알을 인공부화하는데 성공했지만, 부화한 치어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는 최근까지도 규명하지 못했다.
이처럼 장어의 양식에 관한 연구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아직도 일본·한국·중국·대만 등 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의 하천 등에서 양식용 장어 치어가 남획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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