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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주말기획

2014.10.18 평화헌법 지켜온 일본 국민, 내년엔 노벨평화상 받을까?

 “전쟁하는 나라로 가는 것을 그냥 놔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우리같은 보통의 아줌마·아저씨들이 힘을 모은다면 ‘평화헌법’은 반드시 지켜낼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지난 13일 오후 1시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가와사키시종합복지센터. 인근 JR무사시나카하라(武藏中原)역을 빠져 나온 아줌마·아저씨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30분 후 열리는 평화헌법 지키기 집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다.

 

지난 10월 13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가와사키시종합복지센터에서 개최된 평화헌법 지키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부인 야마시타 나오코(山下なおこ·56)는 “우리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숨지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며 “평범한 시민들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10년전부터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전쟁하는 나라를 용서하겠습니까’라는 구호 아래 열린 이날 행사는 시작 전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9조 가나가와의 모임’은 당초 800~900명 정도가 참석할 것으로 보고 복지센터 강당을 행사장으로 준비했지만, 실제로 몰린 사람은 배 가까운 1600여명에 이르렀다. 주최 측은 같은 센터의 7층에 임시행사장을 만들어 넘치는 참가자들을 수용했다. ‘헌법 9조’에 대한 수호 의지를 상징하는 999엔(약 1만원)의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올 수 있는 행사였지만, 행사장은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전쟁’을 막기 위해 나선 이들의 행사는 평화로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풍자 토크에 나선 코미디언 마쓰모토 히로(松元ひろ)는 “자민당의 폭주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겠다던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액셀레이터를 확 밟아버렸다”며 자민·공명 연립 여당의 폭주를 비판해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약 3시간동안 공연·강연 등으로 진행된 행사가 끝날 무렵, 가나가와현 일대의 ‘헌법 9조 지키기’ 관련 단체 대표들이 각종 구호가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무대에 올라 평화헌법 수호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오카다 히사시(岡田尙) ‘9조 가나가와의 모임’ 사무국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전국의 헌법 9조 지키기 관련 단체들과 논의하고 있다”며 “국민의 힘으로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을 막아내자”고 호소했다.

 ‘평화헌법’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헌법 9조를 지켜내자는 평범한 일본인들의 목소리가 요즘 부쩍 커지고 있다. 그동안 가정에서, 회사에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묵묵히 해오면서 ‘헌법 9조 지키기’ 서명지에 사인을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는데 그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직접 나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달 초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이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명된 이후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9조 가나가와 모임’의 와카쓰키 시로(若月司郞)는 “2005년 11월 우리 모임이 발족한 이후 이번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고, 또 열기가 뜨거워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헌법 9조가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명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평화헌법의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되고,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려놓으면서 헌법 9조에 대한 관심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헌법 9조에게 노벨상을, 실행위원회’의 구성원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헌법 9조에 노벨상을, 실행위원회’의 다카스 나오미가 지난 10일 오후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국민’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뒤 가나가와현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 중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주부 다카스 나오미(鷹巢直美·37)이다. ‘노벨상’ 아이디어를 처음 낸 그는 아이 2명을 키우는 평범한 전업주부다. 20대 때 호주 유학을 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겪은 난민들을 만나 그들의 처참한 상황을 접한 적이 있었던 것을 빼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는 “2012년 12월 개헌공약을 내세운 아베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운동을 시작했다”며 “전후 수 십년동안 일본의 평화를 지키면서 세계의 평화에 기여해온 헌법9조에게 노벨평화상을 준다면 정치인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1월 그는 자신과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헌법 9조에게 노벨상을, 실행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호시노 쓰네오(星野恒雄·81)를 비롯, 주부·전직 교사·회사원 등 16명이 실행위원회에 참여했다.

 그해 5월, 어렵게 모은 1500명의 서명과 함께 ‘일본국 헌법 9조’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서류를 노벨위원회에 보냈지만, 위원회로부터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개인과 단체로 한정된다’는 규정이 있어서 접수가 안된다는 회신을 받았다. 궁리 끝에 이들은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으로 이름을 바꿔 신청하기로 하고 활동을 지속했다.

 

 이들의 활동무대는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가 아니다. 다카스가 생활하고 있는 가나가와현 자마(座間)시와 실행위원 등이 사는 사가미하라(相模原)시 등이 주무대이다. 이렇다할 사무실 하나 없이 일을 시작한 이들은 매주 장소를 옮겨가며 모임을 열었다. 직접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기도 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사이버 서명도 받았다. 지난 2월, 이들은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을 후보로, 노벨위원회에 신청서류를 접수시킨 뒤 본격적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난 7월 1일 아베 정권이 일본 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각의결정을 한 뒤 서명자가 급증했다.

 

 “헌법에 대한 해석변경으로 일본이 세계 곳곳에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중국·독일·노르웨이 등 해외 곳곳에서 서명희망자가 쇄도했어요. 저희들로 깜짝 놀랐습니다. 최종적으로 서명자가 44만명에 이르렀거든요.”(호시노 쓰네오 공동대표)

 

 다카스 등 아줌마·아저씨들은 가두와 인터넷에서 서명을 해준 사람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이 운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이들은 내년에도 다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인들에게 노벨평화상의 꿈을 키워준 ‘헌법 9조에게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나 지난 13일 ‘노벨평화상 후보 소동’ 이후 첫 집회를 연 ‘9조 가나가와의 모임’은 일본 전국에 결성돼 있는 헌법 9조 지키기 모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무려 7500여 개의 헌법 9조 지키기 모임이 결성돼 있다. 대부분 각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든, ‘풀뿌리 조직’이다.

 각자 살아가는 지역에서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평화헌법의 가치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누군가가 평화헌법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 당장 나서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24일 도쿄 중심가의 히비야공원에서 ‘아베내각의 개헌폭주를 용서하지 않는 집회’라는 이름의 전국대회를 열어 평화헌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과 의지를, 여전히 ‘개헌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아베 정권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위기에 처한 일본 헌법9조

 

 ‘국방군’ 만들고, ‘군법회의’ 부활시키고, ‘전쟁포기’ 문구는 무력화시키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은 지난 7월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강행함으로써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일본은 지난 8일 발표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중간보고서에서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세계 곳곳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국내·외에 과시했다.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의 이런 움직임의 종착점은 ‘개헌’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개헌의 방향은 그가 속해 있는 자민당이 2012년 4월 만든 ‘일본국헌법개정초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민당이 야당 시절 내놓은 이 초안을 보면 군대를 당당하게 만들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겠다는 자민당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 9조에는 ‘우리나라(일본)의 평화와 독립,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군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명기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가 공격을 해올 때 방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재의 ‘자위대’ 대신 다른 나라에 대한 공격도 가능한 ‘군대’를 갖겠다는 자민당의 속셈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은 또 ‘국방군에 속한 군인 등이 죄를 저지른 경우 재판을 하기 위해 재판소를 설치한다’며 평화헌법 제정 이후 사라진 ‘군법회의’를 부활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재 일본헌법은 ‘모든 사법권은 최고재판소(대법원)와 산하 재판소(법원)에 속해 있다’며 군법회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 역시 ‘군대’를 갖겠다는 집권 여당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개헌 초안은 ‘전쟁의 포기’라는 평화헌법의 개념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현행 일본 헌법의 핵심인 9조는 ‘일본은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은 ‘무력은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해외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여지를 남겨놓는 등 ‘전쟁포기’라는 핵심 개념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전쟁을 하지 않게 하는 1000인회’의 시미즈 마사히코(淸水雅彦) 일본체육대 교수는 <집단적 자위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일본국헌법개정초안’을 보면 군대 보유를 바탕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집권 여당의 본심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헌법9조


 -1946년 11월에 공포된 일본 헌법 중 9조
 -일본의 전쟁 포기, 전력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 등을 담고 있기때문에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9조 전문

①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전항(前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