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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우리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돌려주자

 일본을 상징하는 거리 풍경이 있다. 매년 4월 1일과 10월 1일, 일본의 거리는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4월 1일을 전후해 상당수 회사와 기관에서는 신입사원들의 ‘입사식’이 열린다. 새내기 사회인들은 이날 주로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아침 출근길, 그들의 얼굴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그에 따른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그날 저녁 거리도 우르르 몰려다니는 신입사원들로 북적거린다. 

 

 

일본 항공회사 전일본공수(ANA)의 신입사원 '입사식'. 일본의 기업들은 보통 매년 10월 1일 입사가 내정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정식'을 연 뒤 이듬해 4월 1일 '입사식'을 개최한다.

 


 10월 1일 전후에도 정장 차림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른바 ‘내정식’을 마친 사람들이다. 상당수 일본 기업들은 이듬해 4월 1일부터 일할 신입사원을 6개월전에 확정하는데 이를 ‘내정’이라고 한다. 입사 예정자들을 불러다 놓고 개최하는 ‘예비 입사식’이 바로 내정식이다. 봄부터 이어진 ‘슈카쓰(就活·취업활동)’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시기부터 ‘즐거운 대학생활, 행복한 청춘’을 보내게 된다.

 대학생의 경우 졸업논문을 쓰면서 대학생활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가 종료될 때까지 수업에 충실하게 참가하면서 학창생활을 즐긴다. 시간을 내서 국내외로 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다. 취업한 회사에 미리 출근하기 위해 교수에게 출석처리를 부탁하는 따위의 일은 흔하지 않다.

 ‘김영란법’으로 일컬어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졸업 전에 조기 취업한 대학생들의 학점 부여나 출결처리 문제로 여러가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가는 취업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상당수 대학 교수들은 취업이 된 학생들에 대해서는 출석을 안 해도 출석처리를 해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승자’가 된 제자에게 그 정도 배려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했다.

 그런데 졸업 이전에 취업이 확정된 학생들이 담당 교수에게 출석 인정을 요구하는 행위가 부정한 청탁에 해당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학생에게나, 교수에게나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교육부가 취업한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학칙 개정을 권유하고 나섰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런 움직임은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학원’으로 전락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은 학기당 16주 전후의 수업을 해야만 한다고 규정해 놓은 교육부가 취업이 확정된 사람은 이 수업을 모두 이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해버린 꼴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이번 기회에 교육의 본령을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대학 문을 나서는 그날까지 학업에 충실하면서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청춘을 청춘답게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기업이나 기관의 신입사원 입사식을 졸업식 이후로 미루도록 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업·기관이, 최소한 주요 기업·기관만이라도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는 시점을 각급 학교 졸업식 이후로 미루도록 조정해야만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취업 이전까지의 청춘은 너무나 가혹하다.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 취업을 하기까지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학창생활이나 청춘은 없다. 그들에게 마지막 몇 개월만이라도 잃어버린 청춘들 돌려준다는 측면에서라도 기업의 입사식을 졸업식 이후로 미루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청춘을 취업에 바친, 가련한 젊은이들이 고갈된 감성을 채우고 회사에 들어간다면 회사나 기관 측에서도 결코 손해날 일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