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8월의 일이다. 일본 돗토리(鳥取)현의 한 무인역 인근 주민들이 역을 지키기 위해 개최한 축제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축제를 보기 위해 한국에서 일부러 왔다는 소개를 받고 나의 손을 덥썩 받아쥐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가 ‘철도마니아’라고는 하지만, 차기 총리감 1순위로 꼽히는 거물 정치인이 시골 마을의 작은 무인역 축제에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시 그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행동에 옮기는 ‘강한 소신’이 느껴졌다.

 

 사실 일본에서 이시바 시게루는 ‘오타쿠(お宅, 특정 분야에 마니아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로 통한다. ‘철도 오타쿠’, ‘캔디즈 오타쿠’, ‘방위 오타구’…. 그의 철도사랑은 유별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수시로 철도여행을 즐기는 그는 유명 야간침대열차가 폐지될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멘트를 날리곤 한다. 걸그룹 캔디즈의 한 멤버를 무척 좋아해 ‘캔디즈 오타쿠’로도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시바의 ‘트레이드 마크’는 뭐니뭐니 해도 ‘방위 오타쿠’이다. 방위청 장관과 방위상을 역임한 그는 방위(군사) 분야에 관해서는 일본의 정치인 가운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과 논리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큰 이슈가 됐던 2014년에는 <일본인을 위한 집단적 자위권 입문>이라는 책까지 냈을 정도다.

 이시바가 일본 국민으로부터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9월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였다. 그는 1차 투표에서 5명의 출마 후보 중 1위를 차지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2위와 큰 표차로 앞섰던 그가 2차 투표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에게 역전패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의 저력을 화제에 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시바를 어렵게 누르고 자민당 총재가 된 아베는 같은 해 말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아 총리 자리에 앉은 뒤 이시바의 입과 발을 묶기에 바빴다. 아베는 이시바를 내각의 각료(지방창생담당상)로 끌어들여 그가 함부로 말하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이시바가 지난달 단행된 개각에서 ‘아베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이시바가 드디어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년후의 일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시바는 2018년 9월로 끝나는 아베 총리의 임기를 더 연장할 수 있도록 자민당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오자 이렇게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얼마전에는 “아베노믹스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아베 정권의 핵심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시바의 이런 움직임은 ‘아베 1인 천하’로 변해가고 있는 일본 사회에 큰 의미로 다가온다.

 

 현재 자민당 안에서는 그 누구도 아베에게 ‘노(No)’를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3년씩 2차례만 할 수 있는 총재(총리)직을 3년씩 3차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아예 연임 제한을 없애버리자는 ‘아부성’ 주장까지 분출하고 있다.


 이시바는 2002년 이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등 아베와 같은 극우성향 정치인들과는 일견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우파단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기본적인 성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가 만약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일본의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우리의 이웃인 일본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민주적 정당정치의 가치를 지켜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시바류(流)’의 소신만은 꼭 필요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이시바가 힘을 내줄 필요가 있다.

 

 간바레(힘내라), 이시바.

Posted by 타슈타슈 타슈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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