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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트램의 가치는 트램을 타봐야만 안다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살고 있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ㄱ씨는 트램(노면전차)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1945년 8월 6일 아침,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ㄱ씨는 당시 원자폭탄 투하지점에서 약 1.8㎞ 떨어진 곳을 달리고 있던 트램 안에 있었다. 12살이던 그는 트램 덕분에 살아났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은 전신에 화상을 입고 숨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 히로시마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는 트램


 ㄱ씨는 트램을 아주 좋아한다. 트램이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트램이 이용자들에게 최고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과 같은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없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그는 오랜 삶을 통해서 알고 있다.

 사실 히로시마는 대중교통수단의 전시장 같은 곳이다. 고속열차인 신칸센(新幹線)과 일반 열차가 도심을 지나는 히로시마에는 버스·택시 등의 대중교통수단 이외에 트램은 물론 지하철과 고가방식이 결합된 도시철도까지 있다. 히로시마 시민들은 이중에서 트램을 최고로 꼽는다. 다른 대중 교통수단에 비해 타고 내리거나 환승하기에 편리한 것이 주된 이유다. 무릎이 좋지 않은 ㄱ씨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등 불편한 지하철과 고가 방식의 도시철도는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통팔달, 히로시마 전 시내를 연결해주는 트램

 

 인구 117만명의 대도시인 히로시마에는 7개 노선에 35.1㎞의 트램이 부설돼 있다. 트램의 연간 수송인원은 5500만명으로 수송인원과 노선 길이 모두 일본 최대 수준이다.

 지난 5월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갔을 때 트램의 위력을 절감했다. 신칸센에서 내려 히로시마역을 나서자마자 시내를 실핏줄처럼 연결하는 트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거치지 않고 가볍게 걷는 기분으로 올라탄 트램은 오바마의 방문지인 히로시마평화공원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줬다. 트램은 레일이 설치된 도로를 버스·택시·자가용 승용차·화물차 등과 함께 공유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트램은 자전거와는 물론 버스,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환승에

 최고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히로시마 이외에도 고치(高知), 마쓰야마(松山) 등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인 도쿄(東京),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트램을 직접 이용해 봤다. 그때마다 일본처럼 고령자가 급증하고 머지않아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도 트램이 최적의 대중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곤 했다.

 최근 한국의 대전광역시가 시내의 순환형 도시철도를 트램으로 건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구가 15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핵심 도시철도망을 트램으로 건설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트램의 효용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고가방식의 도시철도로 해야한다는 등의 반대의견을 쏟아내고 있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반대 논리의 핵심은 트램을 건설하는 경우 도로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트램을 설치하면 도로가 막혀서 난리가 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기우이기도 하지만, 설사 트램 때문에 기존 도로기능의 일부가 저하되고 차량 흐름이 나빠진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트램의 ‘긍정적인 효과’로 보고 싶다. 트램 때문에 도로가 막혀 자가용 운전대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정책의 효과가 되기 때문이다.

 70년전 ㄱ씨의 목숨을 지켜준 히로시마의 트램이 지금은 ㄱ씨 같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수많은 서민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도시의 교통정책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 대전시의 이번 결정이 급속한 인구변동을 겪고 있는 한국의 도시들에 모법답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