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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아베가 오바마에게 부쳐준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 그 맛은?


 일본 히로시마(廣島)는 ‘오코노미야키(お好み燒き)’로 유명한 곳이다. ‘오코노미야키’라는 말은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자유럽게 넣어 부쳐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 음식은 우리나라의 부침개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넣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 뿌려먹는 소스(양념)의 맛 등은 상당부분 다르다.

 

히로시마의 명물 '오코노미야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히로시마에 가 있는 동안 오코노미야키를 매일 먹었다. 바쁜 일정 속에 빨리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주문하면 바로 음식이 나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다녀간 지난 27일 밤에는 히로시마의 명소로 ‘오코노미야키 골목’을 뜻하는 ‘오코노미야키무라(村)’을 찾았다. 오코노미야키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일을 떠올리던 중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방문’이라는 빅 이벤트가 만들어진 과정은 히로시마의 명물인 오코노미야키의 그것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50분 동안 히로시마평화공원을 찾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안내로 원폭자료관을 10분 정도 돌아봤고, 위령비 앞에서 헌화한 뒤 17분간의 연설을 했다. 일본인 피폭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 오바마 대통령은 강 건너에 있는 원폭돔을 잠시 바라본 뒤 귀국길에 올랐다.

 ‘현직 미국 대통령의 첫 히로시마방문’이라는 ‘오코노미야키’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코노미야키를 만들 때 좋아하는 것을 집어넣듯, 일본은 이번 방문 이벤트에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템들을 골라 넣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원폭 피해지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폭자료관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지난달 존 케리 국무장관이 거기를 둘러본 사실까지 거론하면서 자료관에는 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오코노미야키를 만들 때 쓰는 ‘주걱’은 일본이 쥐고 있었다. 일본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참상의 현장을 봐야만 한다”고 우겼고, 그런 의지를 결국 관철시켰다. 일본 측은 오바마 대통령과 원폭 피해자들의 대면도 강력히 원했다. 결국 원폭 투하 국가의 대통령과 원폭 피해자들이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피해자를 꼭 껴안고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은 일본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한다’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 장면을 본 상당수 사람들은 ‘사죄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히로시마평화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위령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들러 헌화할 것을 원했다. 피해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는 당일 오전 위령비 앞에 나와 “꼭 들러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단 몇 분만 할애하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발길은 끝내 그곳을 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오코노미야키를 부치는 주체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에 가지 않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코노미야키의 주걱 자루를 쥐고 있는 아베 정권이 그것을 원했겠는가.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의 전쟁 책임은 접어두고, 미국의 원폭 투하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방문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전쟁책임을 다시 들춰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오코노미야키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먹고 싶은 재료를 넣어 만들어먹는 음식이다. 아베 정권이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에 넣고 싶어한 것, 빼고 싶어한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단 50분만에 만들어진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의 맛은 한국인들에게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