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종-주말기획

태블릿PC로 나뭇잎 팔아 1억 버는 70~80대 할머니들

 

 

집앞 단풍나무에서 나뭇잎을 따던 니시카게 유키요(西蔭幸代·78)가

태블릿PC를 꺼내 보이면서 밝게 웃고 있다.

 

 

 “도쿄(東京) 나와라, 우리랑 한판 붙자.”


 ‘타도 도쿄’를 내세운 일본 지자체의 역발상이 열도를 깨우고 있다. 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시코쿠(四國)의 도쿠시마(德島)현이 ‘vs 도쿄’라는 도발적인 구호를 앞세운 지역발전전략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인구 76만명에 불과한 작은 지자체가 1337만명의 일본 최대 도시 도쿄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도쿄 등 대도시의 정보통신(IT)인프라가 뛰어나다면, 우린 그것보다 더 뛰어난 것을 갖추면 돼. 그래야 이길 수 있어.”

 

 도쿠시마현은 ‘거인 도쿄’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정공법을 썼다. 이이즈미 가몬(飯泉嘉門·55) 지사 등 도쿠시마현 사람들은 도쿄나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등 대도시의 IT인프라는 이용자가 너무 많아 체증을 빚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용자가 적은 곳에서 최고의 통신망을 갖춘다면 서비스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현 전역에 최첨단 광통신망을 깔았다.

 

 도쿠시마현이 2011년 일본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화와 함께 추진한 ‘광통신망 왕국 도쿠시마 프로젝트’는 ‘깡촌’ 도쿠시마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줬다. 뻥뻥 뚫리는 도쿠시마의 광통신망을 찾아 기업과 사람이 몰려들었다. 산속에서까지 원활하게 연결되는 와이파이 환경 덕분에 70~80대 노인들까지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면서 일을 하는 새로운 풍속도까지 생겨났다.


 

■농가 외양간에 최첨단 사무실을 꾸민 IT기업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최고의 사업아이템을 올릴테니까요.” 

 지난달 26일 오전 도쿠시마현 가미야마(神山) 마을 한켠의 농가주택. 기업체 등을 대상으로 명함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IT기업인 산산(주)에서 사업개발업무를 하는 이와시타 히로노리(岩下弘法·34)가 컴퓨터 화상을 통해 도쿄 본사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와시타가 일을 하고 있는 공간은 본채 뒤에 있는 외양간이었다.

 

 

 “저희 회사의 연구실입니다. 이 곳은 100년 전에 지어진 이 집의 외양간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해서 쓰고 있어요.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 일에 집중하는 데 최고입니다.


 

IT기업인 산산(주)의 직원들이 지난달 26일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의 민가 외양간을 개조해 만든 연구실 앞의

‘그네침대’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회사 측은 목조로 된 외양간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철골을 덧대고 거기에 유리·바닥재는 물론 냉난방기·조명기기를 달아 최신식 연구실로 개조했다. 이 회사 데라다 지카히로(寺田親弘) 사장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자연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해 이 곳에 ‘가미야마 랩(Lab)’이라는 이름의 연구실을 열었다.

 

 주로 기술직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이곳에 와서 일을 한다. 회사 측은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사무실 앞에 ‘그물침대’도 설치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피곤하다 싶으면 노트북PC을 들고 나와 여기에 누위서 일을 하거나 쉬는 모습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데라다 사장은 직원들이 자연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지역을 찾다가 이 지역이 천혜의 자연과 함께 최첨단 통신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민가에 연구실을 열었다.

 

 인근에 있는 IT분야 기업인 (주)플랫이즈 역시 2013년 비어있는 민가를 사들인 뒤 ‘가미야마센터’를 열었다. 초고화질 영상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이 회사 역시 도쿠시마의 최첨단 통신인프라를 찾아 이곳에 왔다.

 이들 회사가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도 최소 3시간 이상 걸리는 이곳에 연구소와 센터 등을 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도쿠시마현의 정책 덕분이다. 이들 회사의 업무는 통신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는 진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업체 대부분은 도쿄 등 대도시를 무대로 활동을 한다. 그러나 도쿠시마현의 상식을 깬 정책 덕분에 직원들이 자연 속에서 원격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쿠시마현이 자체 예산 5억엔, 국가보조금 37억엔, 관련 업체 부담액 202억엔 등 244억엔(약 2334억원)을 투입해 ‘광통신망 왕국 도쿠시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후 도쿠시마로 들어온 IT 관련 기업은 31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지금까지 약 50명의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12개의 기업이 한꺼번에 몰려든 가이야마 마을에는 새로운 식당과 숙박업소까지 생겨나는 등 말그대로 ‘개벽’을 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를 넘어 활력을 잃어가던 거리 곳곳에서 이제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플랫이즈에서 영상편집을 하고 있는 미나토 요시미(湊由志美·29)는 “내 고향 시골마을에 초고화질 영상편집을 하는 회사가 있을 줄은 몰랐다”면서 “원하는 일을 내 고향에서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스미타 데쓰(隅田徹) 사장은 “도쿠시마의 차별화된 정책 덕분에 우리 직원들이 여기에서 신명나게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지역주민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이야마 지역의 시민단체인 ‘그린밸리’의 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이사장은 “가미야마 마을 전체가 신바람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태블릿PC 들고 다니며 나뭇잎 따는 할머니들

 

 “이게(태블릿PC) 바로 제 밥줄이예요.”

 도쿠시마현 산간의 가미카쓰(上勝) 마을은 온갖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산 중턱의 농가 앞에서 만난 니시카게 유키요(西蔭幸代·78)가 태블릿PC를 꺼내 보였다.

 

상품으로 출하할 나뭇잎을 선별하던 니시카게 유키요(西蔭幸代·78)가

 밝게 웃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태블릿PC를 이용해 주문을 받은 뒤 전통요리에 들어가는 온갖 나뭇잎과 꽃잎을 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는 나뭇잎 팔아서 모은 돈으로 남편과 함께 일본 전국을 여행하곤 했는데…. 지금 버는 돈은 내가 죽으면 들어갈 멋진 묘를 장만하는데 쓰려고 해요.”

 

 ‘연수입이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도시사람들 부럽지 않게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미카쓰 마을은 인구가 1700명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51.1%에 이르는 이곳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요리용 나뭇잎 전문 공급업체 (주)이로도리 덕분에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변했다. 지자체와 주민이 출자해 만든 이로도리는 일본의 전통요리에 쓰는 나뭇잎과 꽃잎을 전문적으로 공급해 연간 2억6000만엔(약 24억87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이 지역 농가 중에는 연간 1000만엔(약 9566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이 집 근처나 산속에 널려 있는 나뭇잎을 팔아서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도쿠시마의 통신인프라가 있다. 일본 요리용 나뭇잎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수시로 변하는 나뭇잎 수요를 인터넷을 통해 파악하고, 주문도 인터넷으로 받는다. 나뭇잎을 생산하는 노인들은 태블릿PC를 산속까지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변하는 주문량을 파악해 작업을 진행한다.

 

 (주)이로도리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 대표는 “시골마을까지 ‘가장 빠른 광통신망’으로 꾸미겠다는 역발상이 늙어가는 일본 열도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이이즈미 가몬(飯泉嘉門·55) 도쿠시마현 지사

 

 

 

 

 

“단순한 노이즈마케팅이 아니다”

 

 도쿠시마(德島)의 작은 개혁을 이끌고 있는 이이즈미 가몬(飯泉嘉門·55) 도쿠시마현 지사를 지난달 25일 도쿠시마현청에서 만났다.

 

 그는 “‘vs 도쿄’는 도쿄에 싸움을 걸어서 도쿠시마의 이름이나 알리겠다는,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 차원의 구호가 아니다”라면서 “개혁의 선순환을 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자극제”라고 말했다. 이이즈미 지사는 “도쿄에 자극을 줌으로써 도쿄는 물론 일본 전국의 지자체들이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이즈미 지사는 ‘정보통신(IT)인프라는 대도시가 앞선다’는 상식을 깼다. 그는 지역의 광통신망 구축에 행정력을 집중해 산과 들, 그리고 바다가 거의 다인 도쿠시마를 일본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지역으로 만들어냈다.

 

 “도쿄·오사카의 통신망도 훌륭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늘 체증을 빚습니다. 그러나 도쿠시마의 통신망은 늘 뻥뻥 뚫려있어요. 대도시의 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기업과 사람을 우리 도쿠시마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지요.”

 

 그는 지난해 12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도지사를 직접 찾아가 “도쿠시마 대 도쿄의 대결을 통해 일본의 미래를 바꿔가고 싶다”는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이즈미 지사는 “지금까지 똑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