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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언론의 급소에 칼을 대는 정권들

 “언론을 응징하는 데는 광고료 수입을 없애는 것이 제일이다.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


 지난달 2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지지하는 자민당 의원들의 모임에서 이런 발언이 쏟아졌다. 모임에 강사로 나온 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전 NHK경영위원)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오키나와(沖繩)지역의 2개 지방신문이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오키나와의 2개 신문은 부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과 그 주변 인사들의 언론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전 NHK경영위원)

 지난달 한국에서는 비슷한, 아니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정권의 생각이 아니라, 정권의 생각이 담긴 ‘행동’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1면에 메르스 관련 광고를 게재하면서 국민일보만 제외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이 이유”라고 비판했다. 같은 달 온라인 매체를 대상으로 메르스 광고를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보수성향 매체에 광고를 몰아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이전 정권에서도 있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8년 5월 정부는 종합일간지 7개사와 경제지 2개사 등 9개 신문 1면에 ‘한·미 FTA 위기를 기회로 바꿉니다’라는 제목의 정책 홍보광고를 게재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 정책에 대해 강한 비판 논조를 보인 경향신문과 한겨레에는 광고를 내지 않았다.

 신문·잡지·방송 등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광고수입에 주로 의존해 경영을 한다. 수신료로만 운영하는 NHK 등 일부 공영방송을 제외하고, 광고 수입없이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언론은 거의 없다. 특히 1개월 구독료가 책 1권 가격에 불과한 한국의 신문들에 광고 수입은 존립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다.

 머리좋은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한국 정부는 광고가 신문의 ‘급소’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급소 앞에 주먹이나 흉기를 들이대고 협박을 일삼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멋대로 떠들어대면 급소를 바로 가격해 치명상을 입히겠다는, 아니 죽여버리겠다는 ‘치사한 협박’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이라는 주간지가 있다. 지난해 지령 1000호를 넘긴 나름 ‘전통’이 있는 매체다. 정부 정책에 혹독한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잡지는 광고를 단 하나도 받지 않고 오로지 구독료로만 운영한다. 지난해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사를 취소한 이후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 자체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분출하고 있지만, 이 잡지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에 홀로 맞서고 있다.

 

 이 잡지는 최근 위안부 사태를 검증하는 특집기사를 통해 “위안부의 강제성 문제에 대해 뚜껑을 닫지 말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 사회의 버팀목으로 불리는 아사히까지 정권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은 잡지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이 잡지에게 있어서 무서운 것은 정권도 광고주도 아닌, ‘구독료’를 꼬박꼬박 내주고 있는 독자뿐이기 때문이다.

 제작 상 엄청난 돈이 드는 신문을 오로지 구독료로만 발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문사 운영에서 차지하는 구독료의 비중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그만큼 신문의 힘은 세질 수 있다. 정권이나 광고주의 눈치를 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신문은 결국 독자가 지켜내는 수 밖에 없다. 만약, 당신에게 ‘좋은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신문이 하나쯤 있다면, 그 신문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서 키워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건강해지고, 당신의 삶이 나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