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네누키(骨拔き)’. 동물·생선 등에서 뼈를 발라내는 행위를 뜻하는 일본어이다. 어떤 것의 알맹이를 빼버림으로써 무력화시키는 행위를 빗댈 때 많이 쓰인다. 지난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시도한 고노담화 작성과정 검증이 바로 이 ‘호네누키’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2012년 12월 말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 ‘고노담화 작성과정에서 한·일 정부 사이에 물밑 협의가 있었다’는 식의 주장이 우익 언론과 정당 등에서 쏟아졌다. 이후 2014년 2월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우익 야당은 “고노담화에 대한 검증 의사가 있느냐”고 따졌다. 사실상 검증에 나서라는 압력이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검토하겠다”고 화답했고, 얼마 후 아베 총리도 “(고노담화 검증의) 시기를 놓치지 말고 논의를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담화 검증에 가속도가 붙었다. 같은 달 28일 스가 장관이 “고노담화 검증을 위한 조사팀을 정부 내에 설치하겠다”고 공식 천명하면서 검증 작업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지난해 3월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단언했다. 표면적으로는 담화를 수정할 생각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담화 작성의 토대가 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된 사실 관계는 물론 한·일 사이의 담화 문안 사전조정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사실상 고노담화에 대한 ‘흠집내기’로 읽히면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아베 총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이 다다키 게이이치(但木敬一) 전 검찰총장을 좌장으로 발족시킨 검증팀은 결국 “고노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사이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검증 결과를 내놨다. 담화가 한·일 양국의 조율을 거친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일본 정부가 진행해온 고노담화 작성 과정에 대한 검증은 총리 취임 이전부터 담화의 수정 의사를 밝혀온 아베 총리의 의중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래서 담화 작성 과정 검증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흔들기 위해 아베 정권이 치밀하게 마련한 ‘호네누키 전략’의 결과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5일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종전 70주년이 되는 오는 8월 15일 이른바 ‘아베 담화’를 발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회견에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역대 정권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24일 TV프로그램에 나와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의 뜻’,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무라야마 정권 등 역대 정권이 담화에 사용해온 ‘키워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 담화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가 다시 ‘호네누키 전략’을 빼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쟁의 책임에 대한 역대 정권의 인식을 두루뭉수리하게 계승한다고 밝히면서, 세부적으로는 사죄와 반성이라는 ‘뼈대’를 확 빼버림으로써 그동안 나온 담화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는 얘기다.
아베 총리는 최근 국제 무대에 나갈 때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가 ‘호네누키’와 같은 꼼수로 과거 역사를 잇따라 부정하고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들을 자극해 간다면, 국제사회는 그가 주장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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