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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12.04/비정규직만 100만명 늘린 '아베노믹스',심판대?

 2007년 일본의 지상파 방송인 니혼TV는 10부작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방송해 큰 인기를 끌었다. 배우 시노하라 료코(篠原凉子)가 주연한 이 드라마는 ‘파견사원’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평균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인공은 정리해고를 당한 뒤 파견사원의 삶을 살아가면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이른바 ‘정규직들’과 싸워나간다. 주인공은 드라마 안에서 펼쳐진 한 승부에서 고의로 팀장 등에게 져준다. 그는 “자존심보다 파견사원이라는 신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정규직 사원과의 공존이 필요하기 때문에 져줬다”이라는 독설을 날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이런 행동과 대사는 이른바 ‘비정규직’의 급증에 따른 사회적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


 

 일본 국민들이 7~8년전 드라마를 보면서 고민하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문제가 14일 치러지는 일본의 총선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잘 사는 나라’의 길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일본에서 비정규직이 오히려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비정규직 논란은 따지고 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초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18일 중의원 해산과 총선 실시를 결정한 뒤 기회만 있으면 “아베노믹스 덕분에 고용이 무려 100만명이나 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일본의 일자리는 정권 출범 당시에 비해 101만개 정도 늘었다. 단순한 수치로만 보면 2년 동안에 올린 실적치고는 ‘꽤 괜찮다’는 평가가 나올만 하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아베노믹스가 실상은 내용이 없다는 식의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 입장에서 보면, 이 수치는 어쩌면 높이 치켜들고 싶은 자랑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질’을 따지는 야당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을 당시 1829만명이던 비정규직 사원의 수는 2년 사이 1952만명으로 123만명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정사원의 수는 3327만명에서 3305만명으로 22만명 감소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특히 늘어난 일자리 가운데 70%는 65세 이상 고령자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 점을 들면서 ‘일자리 100만개 창출 주장’은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야당의 이런 공격을 ‘임금인상 실적’으로 받아치고 있다. 그는 올해 임금이 2% 인상된 사실을 거론하면서 “내년 봄에도 기업들을 재촉해 임금을 더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아베 정권은 올 봄 경기둔화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 압박을 가하는 이른바 ‘관제춘투’를 통해 2%의 임금 인상 실적을 올린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노’와 ‘사’ 가 아니라 ‘관’이 나서서 추진하는 봄철 인금투쟁을 ‘관제춘투’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근로통계조사 속보치를 보면 올 10월 실질임금지수는 마이너스 2.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16개월 연속 줄어든 것이다.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 덕택으로 월급이 올랐다고 주장하지만,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은 더 낮아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일자리 100만개 증가’와 ‘명목임금 2% 인상’이라는 아베노믹스의 ‘겉으로 드러난 성과’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관제춘투’와 같은 ‘드라마’ 뒤에 숨겨진 대기업과 정권의 유착, 그리고 비정규직의 확대 등 ‘속으로 곪아가는 문제’를 심판할 것인가.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불안이 커지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행방을 가늠할 이번 선거 결과를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