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파원칼럼

2015.03.04 '전쟁할 수 있는 나라'만들기 나선 아베 정권의 조급증?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가 실외 공공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뉴스가 TV와 신문 등에 연일 보도됐다. 지요다구는 거리의 금연구역을 사람들에게 보다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길바닥에 금연그림을 표시해 놓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흡연자의 설자리를 하나씩 빼앗아가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 지자체의 이런 소동을 보면서 ‘일본은 머지않아 담배 피우기가 어려운 곳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이며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인 일본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의 거의 모든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흡연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지만, 실내 금연도 곧바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나는 이후 도대체 변화하지 않는 일본의 흡연 풍경에 더 놀랐다. 2003·2004년 일본 대학에서 연수를 할 때도, 이후 일본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올 때도 일본의 흡연풍경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노상금연 조치가 상당수 지자체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술집이나 음식점, 심지어는 커피숍에서까지 흡연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2015년 3월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정부나 지자체가 흡연자는 물론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음식점·술집 등의 반대 여론 때문에 음식점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사업을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신칸센(新幹線)에서까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일본을 ‘흡연자의 천국’이라고도 한다. 음식점 등의 흡연금지 조치를 빠르게 강화해 올초부터는 모든 음식점 등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한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도지사가 최근 “2020년까지 음식점의 금연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흡연천국 일본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실내 흡연시 벌칙을 부과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겠다’면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는 실내에서의 흡연을 막아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스조에 지사의 이런 계획이 생각대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련 업계 등의 반발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스조에 지사가 그의 계획대로 2020년까지 ‘음식점 금연’을 이루게 된다면, 2002년 거리 흡연 금지 조례 제정 소동 이후 무려 18년만에 음식점 흡연규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이 나라는 어떤 사안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될 때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하게 듣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등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친 뒤 어떤 사안을 정하는 것이 이 나라의 기본적인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선 뒤 이런 일본의 기본적인 문화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아베 정권은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이라는 중대 사안을 국민·야당과의 충분한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단박에 결정해버렸다.

 

 최근의 개헌작업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 국민의 상당수가 ‘평화헌법’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헌법을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늦어도 2017년초까지는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표까지 내놓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한 일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빨리 만들어야한다는 조급증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국민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베 정권에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