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약칭) 회원들이 이번에는 피자를 먹었습니다만, 언젠가는 그 피자를 다른 사람들을 향해 집어던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행동이 보다 과격해질 수 있다는 얘기죠. 한국의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합니다. 외면하거나 피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분명히 얘기해야만 합니다.”
일본의 프리랜서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가 지난 9월 15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도내 경향신문 도쿄지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는 일베의 ‘위험한 미래’는 일본의 ‘재특회(在特會·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재일 한국인 등을 향해 보여온 그동안의 행동을 통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일베도 재특회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거친 구호를 외치면서 그들의 생각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의미다. 재특회는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부당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배척하는 운동을 벌여온 우익 계열 단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배외(排外)주의자들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추적해 온 프리랜서 언론인인 그는 재특회의 움직임을 다룬 저서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를 통해 일본 사회에 ‘넷우익’(인터넷상의 우익세력)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바 있다.
야스다는 지난 15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경향신문 도쿄지국에서 인터뷰를 통해 “일베의 요즘 모습을 보면 한발 앞서 비슷한 길을 걸어온 재특회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야스다는 지난 6일 일베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폭식 퍼포먼스’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일부 일베 회원 등이 세월호 유가족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현장 인근에서 피자·치킨 등을 나눠 먹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접한 뒤 그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동안 천착해온 재특회 문제를 바탕으로 일베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넷우익 문제를 짚어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그는 재특회와 같은 넷우익을 방치해 결국은 커다란 문제를 부른 일본 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특회가 처음 생겨난 2006년 무렵 인터넷 상에는 ‘재일한국인을 죽이자’, ‘한국인을 쫓아내자’ 등 과격한 구호들이 난무했습니다. 여러사람들이 인터넷상에 모여 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조직을 만든 뒤 과격한 발언을 주고받은 거죠. 인터넷 게시판은 물론 동영상 사이트까지 동원해 위험하고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일본 사회는 그들을 ‘일부의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극히 일부의 극단적인 차별주의자, 극우주의자들이 인터넷 안에서 제멋대로 소란을 떨고 있을 뿐, 밖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세상은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야스다는 재특회가 처음 거리로 쏟아져나왔을 때, 일본 사회가 받은 큰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아무리 소란을 떨더라도 실제 생활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죠.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던 일이 실생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재특회와 같은 넷우익이 성장하게 된 데는 언론이 책임이 크다면서, 한동안 이 문제를 외면해온 자신도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넷우익에 대해 가장 무관심한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신문, 잡지, TV 등 그 어떤 매체도 그들의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일탈’이라면서 방치하는 동안 인터넷 안에서 그 규모가 점점 커졌고, 한국이나 재일한국인들을 비판하는 다양한 책까지 내는 등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올 징조가 강하게 나타났는데도 모든 언론들이 남의 일처럼 취급한 거죠. 일부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레일에서 벗어나 폭주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면서 누구도 취재하지 않았고, 마주앉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재특회 출범 초기 야스다 자신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신문과 잡지의 기자나 편집자들에게 넷우익의 문제를 제대로 취재해 보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 편집자나 기자들은 ‘기사를 쓰면 쓸 수록 그들(넷우익)을 인정해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무시해야 한다. 매스 미디어가 무시하면 언젠가는 저런 조직은 작아질 것이고 결국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끄럽지만 나도 그들의 논리에 휩쓸리면서 당시에는 문제를 외면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일본 사회와 언론은 문제가 곪아서 터진 뒤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이후 재특회 회원들이 일본 내 조선학교에 가서 재일한국인·조선인을 배척하는 가두방송을 하고,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나 오사카(大阪)의 쓰루하시(鶴橋) 등 재일한국인이 많이 있는 곳에서 시위를 하는 등 넷우익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자 언론들이 뒤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와 언론이 사전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비판함으로써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었다면 아마도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없었거가 최소한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스다는 “나 스스로도 이런 뒤늦은 반성을 통해 재특회에 대한 본격적인 추적 취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야스다는 앞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나타나는 넷우익의 문제는 재특회 또는 일베의 회원은 아니지만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요즘 재특회가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널리 알려지면서 새로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특회도 맘에 들지는 않지만, 이른바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을 줄여서 이르는 일본어)는 역시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른바 배외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배외주의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저변이 자꾸만 넓어지고 있다는 얘기죠.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겁니다.”
야스다는 일베의 정치단체화 가능성과 관련, “일베에서 바로 정치인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일베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들을 근거로 해서 정치활동을 하려는 극우 성향의 정치가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한국사회는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의 자민당이나 일본유신회 등의 일부 우익정치인들이 이미 그런 활동에 들어간 점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광화문 폭식’과 같은 일베의 퍼포먼스는 앞으로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과격한 퍼포먼스의 대상은 점차 외국인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퍼포먼스는 결국 매스컴 등 누군가에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퍼모먼스라는 것은 그 속성상 더 심해지고, 더 화려해져야만 주목을 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심한 슬로건을 내세우는 등 점점 격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북한이나 이른바 ‘빨갱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일베가 지금의 운동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 오면 결국 표적을 외국인, 한국에 와서 사는 이민자들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변화인 국제화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야스다는 “재특회·일베와 같은 넷우익의 가장 큰 특징은 격한 구호 이외에 제대로 된 논리가 없다는 것과 어린 중학생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른까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거기에 참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이때문에 방치하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넷우익의 규모가 커지고, 그들이 사회로 쏟아져나온 뒤에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데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든다”면서 “한국은 재특회의 폐해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예를 통해 넷우익에 미리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야스다 고이치는 누구?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49)는 일본의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한동안 각종 사건과 노동문제를 주로 취재해 오던 그는 요즘 일본 내 외국인 차별, 혐오범죄 문제를 대상으로 취재와 집필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2012년 4월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를 출간하면서 일본 국내·외에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이 책은 지난해 5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됐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흔히 ‘재특회(在特會)’로 일컬어지는 넷우익 단체를 중심으로 인터넷상에서 주로 진행되던 극우 담론을 거리로 옮겨온 사람들을 파헤친 책이다. 최근 들어 재특회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느껴진다는 한국의 일베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야스다는 일단 관심을 가진 문제에 대해서는 끝을 보고야 마는, 끈질긴 취재와 집필로 유명하다.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의 집필을 위해 그가 취재에 들인 시간은 1년6개월에 이른다. 그는 취재기간 동안 재특회 관계자는 물론 재특회와 반대 입장에 있는 다른 단체 등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았지만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취재 및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의 이런 노력과 열정은 지난해 ‘일본 저널리스트상’,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 등 각종 상으로 평가를 받았다.
일본의 진보성향 신문인 마이니치(每日)신문의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01년부터 프리랜서로 독립한 그는 노동문제에 관해서도 많은 기사와 책을 발표했다.
일본 내 외국인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 등을 심층적으로 다룬 <르포, 차별과 빈곤의 외국인노동자> <외국인 연수생 살인사건>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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