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 인구가 살아가는 일본의 거대도시 도쿄(東京). 전체 도시면적의 20%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에서 시간당 50㎜ 이상의 폭우가 수시로 쏟아지고, 30년 안에 규모 7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에 이른다. 말 그대로 ‘위험한 도시’이다. 이런 수치만 보면 시민들이 도저히 마음놓고 살아가기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도쿄는 국제무대에서 ‘안전’을 인정받으면서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고도방재(高度防災)도시’를 선언한 도쿄의 방재시스템을 최근 밀착 취재했다.
도쿄도가 도심지역의 수해를 막기 위해 지하 43m 지점에 건설한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 조절지’ 내부 모습. 지름 12.5m, 길이 4.5㎞ 규모의 거대 터널형태로 건설된
이 조절지는 한번에 54만t의 물을 담아놓을 수 있다. 도쿄도 제공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지하 43m 지점에는 거대한 인공동굴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취재진을 안내한 도쿄도 직원 3명이 전등을 비춰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터널은 길고 넓었다.
“여기가 바로 도쿄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바로 그 ‘지하조절지’입니다. 지상에서 폭우가 내려 주택가 등에 침수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물을 담아놨다가 비가 그치면 서서히 흘려 내보내는 거대한 물탱크인 셈이지요.”
다카하시 요시아키(高橋義明) 도쿄도 제3건설사업소 과장은 “유역면적이 10.5㎢에 이르는 간다(神田)천 일대에 평균 51㎜의 비가 쏟아졌을 때 모이는 빗물을 담을 수 있는 규모”라며 “지름 12.5m, 길이 4.5㎞의 이 터널은 한번에 54만t의 물을 담아놓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25m 길이의 수영장 1800개를 채울 수 있는 물의 양을 생각하면 된다.
지난달 28일 도쿄도 나카노(中野)구 젠부쿠지(善福寺)천 취수시설 지점에서 진입한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 조절지’의 바닥은 빗물로 젖어있었다. 다카하시 과장은 “1주일 전 집중호우 때 받아놨던 빗물이 바닥에 남아있는 것”이라며 “올해도 이미 1300만 도쿄도민을 지켜주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지역을 관통하는 7호선 도로를 따라 뻗어 있는 조절지는 3개의 취수시설을 통해 물을 모은다. 폭우가 쏟아지면 간다천, 젠부쿠지천, 묘쇼지(妙正寺)천 등 3개 하천의 물을 지하 34~43m까지 이어지는 연결관을 통해 터널에 가둬둔다.
1945년 무렵 대부분 논이나 밭이던 간다천 유역이 1980년대 이후 96% 이상 콘크리트로 뒤덮인 이후 폭우로 인한 하천 범람이 이어지자 도쿄도는 이 거대 지하조절지 건설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97년 1단계로 2㎞ 구간에 지하조절지를 건설한 뒤 2005년 2단계로 2.5㎞에 추가 지하조절지를 만들었다. 1단계 완공 시점부터 나타난 조절지의 효과는 놀라웠다. 지하조절지가 없던 1993년 8월27일 도쿄 일대에 시간당 최대 47㎜의 비가 쏟아졌다. 당시 간다천 주변 85㏊가 물에 잠기면서 주택 3117채가 침수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하조절지 1단계 건설공사가 끝난 뒤인 2004년 10월9일 시간당 최대 57㎜의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물에 잠긴 면적은 4㏊에 불과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도 46채에 불과했다.
도쿄도는 이 지하조절지 건설 공사에 1015억엔(약 1조150억원)의 예산을 썼고, 시설관리에 매년 1억엔(약 10억원) 정도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고 있다. 고바야시 지카코(小林千佳子) 도쿄도 종합방재부 과장은 “1997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35차례에 걸쳐 이 조절지에 물을 채웠다”며 “지하조절지를 1차례 가동하면 홍수 피해액을 최대 156억엔(약 1560억원)까지 줄일 수 있다는 산정 결과를 고려하면 이미 본전을 뽑은 셈”이라고 말했다.
도쿄도는 중앙관제실에서 폐쇄회로TV를 통해 간다천의 수위를 감시하다가 수위가 위험 수준으로 올라가면 수문을 열어 터널쪽으로 물을 끌어들인다. 여기에 임시로 채운 물은 폭우가 그치고 하천 수위가 내려가고 나면 펌프로 끌어올려 하천에 재방류한다. 도쿄도는 이 지하조절지가 홍수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됨에 따라 도심 수해지역을 중심으로 시설 증설에 나서고 있다. 현재 도심 지역인 미나토(港)구 아자부주반(麻布十番)일대에서 지하조절지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 조절지’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에 의한 재해를 막기 위한 시설이라면 도쿄도의 ‘고조(高潮)대책센터’는 쓰나미와 해일 등 바다에서 밀려오는 물에 의한 재해를 대비하는 시설이다.
도쿄도의‘고조(高潮)대책센터’가 쓰나미와 해일 등에 대비해 운영하고 있는 수문. 도쿄도는 도쿄만 일대를 꼼꼼하게 둘러친 제방과 19개의 수문을 통해 쓰나미 등이 도쿄 도심을 덮치는 것을 막고 있다.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별도 지시 없이도
현장에서 바로 수문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무려 150만명이 만조시의 해수면에 비해 낮은 지대에 살고 있을 정도로 도쿄는 쓰나미와 해일에 취약한 곳이다. 만약 쓰나미나 해일이 그대로 도시로 밀려든다면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바다 쪽에서 발생하는 쓰나미와 해일을 차단하는 것은 도쿄의 안전에 절대적 요소이다. 도쿄도는 도쿄만 일대를 꼼꼼하게 둘러친 제방과 19개의 수문, 4개의 배수기를 통해 쓰나미나 해일이 도쿄를 덮치는 것을 막고 있다. 도쿄도는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예상되는 경우 중앙관제센터의 별도 지시 없이도 현장에서 바로 수문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마쓰오 미토무(松尾認) 도쿄도 고조대책센터 소장은 “만조시에 비해 3m 높은 해일이나 쓰나미가 밀려와도 바닷물이 넘치지 않도록 제방과 수문 등이 설계돼 있다”며 “도쿄는 만(灣)에 있어 해일이나 쓰나미의 수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시설로 완벽하게 재해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문은 연간 7차례 정도 가동된다.
도쿄도는 지진으로 인한 정전이 일어나도 수문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진 시에는 1차로 비상용발전기를 가동토록 하고, 비상용발전기 가동이 안 되는 경우에는 축전기가 작동하도록 하는 등 2중·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도쿄도는 또 현재 1개인 고조방제센터의 지령실이 마비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로 지령실을 설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11일, 도쿄 도심은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주요 대중교통이 대부분 멈추면서 무려 352만명의 시민들이 귀가를 하지 못하고 노숙을 하거나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다. 도쿄도는 향후 30년 안에 도쿄 바로 아래에서 발생할 확률이 70%에 이른다는 규모 7 이상의 ‘수도직하 거대지진’이 발생할 경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51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쿄도는 지진 발생 시 ‘귀가곤란자’를 민간에서 수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에 돌입했다.
지난 6월 도쿄 도심 미나토(港)구에 완공된 지상 52층의 도라노힐스 빌딩 지하에 대지진 발생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민 3600명이 3일 동안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량과 물이 쌓여 있다. 도라노힐스는 재해 발생시 건물 로비 등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피난공간으로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미나토구에 완공된 247m 높이의 지상 52층 건물인 도라노힐스는 집으로 돌아갈 없는 시민 3600명에게 피난 공간은 물론 이들이 3일 동안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량과 식수까지 제공할 수 있다. 재해 발생시 건물 로비 등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피난공간으로 제공하기로 한 도라노힐스 측은 지하비축 창고에 시민들에게 제공할 비상 식량과 식수를 쌓아놓고 있다. 이 빌딩을 운영하는 모리빌딩(주) 홍보실의 와타나베 모이치(渡邊茂一)는 “거대 지진이 발생하면 시민들이 우리 건물로 피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라며 “재난 발생 시 민간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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