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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주말기획

2014.06.28 하늘 위를 달리는 일본 에히메의 자전거도로

 ‘전세계 자전거 마니아가 모이는 자전거 성지’, ‘타올 소믈리에가 만드는 세계 최고의 이마바리 타올’, ‘자연산보다 더 맛있는 양식 참돔’


 일본 에히메(愛媛)현 작지만 강하다. 인구 140만명에 불과한 에히메 현 당국과 주민들이 지역의 명소와 특산품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 명성을 얻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려 마케팅을 펼치는 이른바 ‘브랜드 세계화’ 전략이 먹혀들면서 성공 사례를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의 ‘사이클링 터미널’에서 자전거를 빌린 외국인들이

바다 위 80m의 다리에 조성된 시마나미 바닷길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에이메현 이마바리(今治)시의 ‘시마나미 바닷길 자전거도로’에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헬멧 등 보호장구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마니아들이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는 인도네시아·대만·중국·한국 등 외국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 인도네시아인 리차드 스시로(54)는 “시마나미 자전거도로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유명하다”며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 위를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최대 매력”이라고 말했다.

 에히메현은 이마바리시와 히로시마(廣島)현 사이의 크고 작은 섬과 섬을 잇는 다리와 섬 안의 길들을 연결하는 70㎞ 길이의 도로에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전세계 자전거 마니아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리 위를 달리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세계 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꼭 가보고 싶은 자전거도로’로 꼽힌다. 이곳에서 자전거관광을 안내하고 있는 가이드 우쓰노미야 가즈나리(宇都宮一成·46)는 “외지에서 이곳을 찾는 자전거마니아 수가 연간 17만5000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자전거도로 구간에 일종의 휴게소인 ‘시마나미 사이클 오아시스’ 69곳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이곳을 찾는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휴게소에는 벤치, 자전거 주차시설, 공기주입용 펌프, 식수 등이 비치돼 있다. 주민들은 휴게소 인근의 식당이나 민박집을 통해 지역특산품을 이용한 향토음식을 내놔 짭짤한 부수입도 올린다.

 에히메현은 오는 10월26일에는 ‘은륜의 행렬’이 바다 위의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대회인 ‘사이클링 시마나미’를 열 예정이다. 대회 기간 중에는 도로 주요 구간의 자동차통행이 차단된다. 이미 전세계 자전거 마니아 8000여명이 이미 참가등록을 마쳤다.

 

 

 


 이마바리에서 생산되는 ‘이마바리타올’은 고급타올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타올 생산 역사만 100년에 이른다. 일본 호텔업계에 ‘이마바리타올을 쓰지 않는 호텔은 고급호텔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타올의 품질은 정평이 나 있다. 지역 업체들이 자체 개발한 타올은 전용 실을 통해 흡수성과 부드러움을 높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른 지역의 경쟁 업체들은 여러차례 사용해도 거칠어지지 않는 이마바리타올 특유의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때 이마바리의 타올산업이 주춤했던 적이 있었다. 1980년대까지 연간 매출액이 800억엔(약 8000억원)대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이후 이마바리타올은 값싼 중국산에 밀려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500개에 이르던 생산업체 수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100여개로 급감했다. 연 매출액은 133억엔(약 1330억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불황을 이겨냈다. 살아남은 117개 업체는 타올의 고급화로 승부를 걸었다. 이들은 2006년부터 ‘이마바리타올’이라는 고급브랜드를 공동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생산량과 가격으로는 중국 업체와 대결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마바리타올은 세계시장에서 장당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릴 정도로 브랜드파워를 갖춰가고 있다. 이마바리타올 생산업자들은 미국 뉴욕 블루클린 등에 점포 13곳의 문을 연데 이어 조만간 영국 런던에도 매장을 낼 계획이다. 이마바리타올의 성공 비결은 엄격한 품질관리이다. 이마바리 타올조합은 일본 정상급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고, 품질과 관련한 11개 항목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제품을 선별·관리하고 있다.

 타올 생산을 위한 인재양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마바리 시 당국은 ‘이마바리타올’의 기술과 품질을 지키기 위해 ‘타올 소믈리에 자격시험’ 제도를 도입, 전문가를 양성했다. 에히메현은 현립 이마바리고등전문학교에 ‘이마바리 타올 만들기과’를 설치, 타올 산업인력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지역 타올조합 이사장인 곤도 세이지(近藤聖司)는 “이마바리타올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인구 17만명의 이마바리시 지역에 제공하는 일자리는 2451개에 이른다”며 “브랜드 세계화 전략을 쓰지 않았다면 지역 업체는 대부분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히메현 남부 우와지마(宇和島)시의 도쿠히로(德弘)수산이 생산하는 양식 참돔은 까다롭기로 이름난 일본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양식 수산물의 대표 브랜드다. 이미 전문기관으로부터 “자연산 참돔보다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타이이치로군’이라는 고유브랜드로 출하되고 있는 우와지마 양식 참돔의 비밀은 40여 가지의 재료를 섞은 사료에 있다. 이 사료로 키운 타이이치로군 참돔은 회 등으로 먹을 때 나는 양식 어류 특유의 냄새가 혁신적으로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일본 에히메현 남부 우와지마시의 참돔 양식장 직원이 출하 직전의 양식 참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참돔들은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지역에 다른 양식 참돔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시판하는 사료에 의존해 남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양식장을 운영하던 양식업자 도쿠히로 타이치로(德弘多一郞)는 거래처인 음식점으로부터 ‘양식 물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요리에 쓸 수가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10여년 동안 온갖 시행착오 끝에 ‘특수사료’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도쿠히로는 “사료의 구체적인 성분은 ‘기업비밀’”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사람의 미각에 비해 10배 이상 민감한 기계를 통해 실시한 맛 비교 측정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눈을 가리고 실시한 비교 실험에서 모두 이곳의 양식 참돔이 자연산에 비해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 양식장에서 생산한 참돔은 다른 양식장에서 생산된 것에 비해 2배 가량 비싸다. 최근 경매시장에서 일반 참돔의 시세는 ㎏당 1000엔(약 1만원)이지만, ‘타이이치로군’은 2000엔(약 2만원)이다. 그것도 경매 시장에는 내놓지 않고 음식점과 직거래만하고 있다. 이 지역 횟집 뿐 아니라 멀리 도쿄의 유명 음식점에서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에는 참돔을 전자렌지 등으로 간단하게 조리해 먹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점에 착안, 가공을 해도 냄새가 나지 않고 지방질이 변화하지 않는 참돔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도쿠히로수산은 요즘 세계 시장 진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싱가포르·중국·호주·미국에서 상표등록을 마쳤다. 그동안 쌓아온 참돔 양식 기술을 바탕으로 노르웨이에서 연어를 양식하는 해외프로젝트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쿠히로는 “그동안 양식을 하면서 개발한 사료가 세계 진출의 최대 무기가 될 것”이라며 “양식 연어가 자연산 연어에 비해 더 맛있고, 채산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10만마리의 참돔을 키우면서 연간 2억5000만엔(약 2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가격을 공급자가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히메현 국제교류과의 무라카미 노부아키(村上暢章)는 “에히메현 당국과 기업, 주민들이 일본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오히려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나카무라 도키히로(中村時廣·54·사진) 일본 에이메(愛媛)현 지사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전거를 통한 세계 시장 공략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 에이메(愛媛)현의 나카무라 도키히로(中村時廣·54·사진) 지사는 스스로를 ‘주식회사 에히메의 영업사원’이라고 부른다.
 “에히메의 세계 진출을 위해 우선 시마나미 바닷길 자전거도로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온 그는 지난 12일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도 자전거용 헬멧을 쓰고 응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집무실에 비치돼 있는 자신의 자전거를 만지기도 하고, 올라타기도 하면서 열정을 보여줬다.
 그는 “아치교·사장교 등 여러가지 다리 위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바다와 섬과 조선소 등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마나미 바닷길은 세계 최고의 자전거도로”라고 설명했다. 이어 “70㎞ 길이의 이 자전거도로를 활용해 세계인을 불러들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지사는 2010년 취임 후 대만을 방문, 세계 최대의 자전거업체인 자이언트와 협력 관계를 맺는 등 직접 해외무대를 뛰고 있다.
 대만 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한 이후 에히메현을 찾는 대만인 자전거마니아가 급증하는 마케팅 효과를 경험한 그는 요즘은 2억5000만 인구의 거대 시장인 인도네시아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나카무라 지사는 “우리가 노리는 것은 국내가 아니라 세계”라며 “지난해에 이어 오는 10월 시마나미 바닷길에서 개최하는 일본 최대의 국제사이클링대회인 ‘사이클링 시마나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예산 1억엔(약 10억원)을 포함해 모두 4억엔(약 4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행사에 8000명의 국내외 자전거마니아가 참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행사를 전후해 에히메현 일대의 호텔·여관이 꽉 차는 등 직접적인 경제효과도 크지만 그보다는 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자전거마니아들이 에히메를 다시 찾고, 지역 특산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해 주는 등의 간접적인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지사는 “지구촌 차원의 경쟁 시대를 맞아 이제는 지역도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주민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