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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06.26/일본 정치는 정직하지 않다

2014.06.26

 

 일본인을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본인들이 길에서 다른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줍는 경우 대부분은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정직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오래 전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유명 개그맨이 일본인들이 심야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교통신호를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우리나라에 소개해 큰 반향을 부른 적도 있다.


 

 물론, 실제로 일본에서 살아보면 대로를 무단횡단하거나 신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지만, 정직하고 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정직한 일본인론(論)’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국민들 속의 이야기이고, 일본의 정치판을 살펴보면 ‘정직’과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너무나 자주 보인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려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입으로 내뱉은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리곤 한다.

 지난 18일 열린 일본 도쿄(東京)도의회 정례회 일반질의에서 야당인 다함께당 소속 시오무라 아야카(鹽村文夏) 의원이 질의에 나섰다. 미혼인 시오무라 의원이 단상으로 나와 여성의 임신·출산·불임 등에 관한 지원 강화의 필요성 등에 대해 발언하는 도중, 여당 의원석 쪽에서 “본인이나 빨리 결혼하는게 좋은 거 아냐”라거나 “(아이를) 못낳는 거 아냐”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시오무라 의원은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잠시 헛웃음을 터뜨리고 발언을 계속했지만, 끝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했다.

 

 사건의 파문은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남성 의원의 야유가 방송 등에 그대로 보도된 뒤 “심각한 성희롱이다”, “도의회의 품위가 의심스럽다” 등의 비판과 함께 “야유를 보낸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피해자인 시오무라 의원도 의회 차원의 발언자 색출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후 5일 동안 ‘야유’를 인정한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자민당이 자체 조사에 나서는 등 야유 발언자를 압박해 가던 지난 23일, 스즈키 아키히로(鈴木章浩·51)라는 의원이 ‘내가 그랬다’며 뒤늦게 손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CNN·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형편없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모자라 정직하지도 못한 일본 정치인’의 모습을 전세계로 중계방송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아이를) 못낳는 거 아냐”는 야유를 보낸 다른 의원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뻔뻔한 모습’은 다른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도쿄의 한 구청장은 ‘한 사람이 3선 이상 당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스스로 제안해 만든 다선금지조례를 무시하고 또 출마해 4선을 이뤘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지난 4월 실시된 소비세 인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지진피해 주민 등을 위해 20% 삭감된 세비를 받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지난달부터 ‘원상 회복된 세비’를 챙겨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외국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최근 발표한 고노(河野)담화 검증 보고서도 ‘정직하지 않은 일본 정치권’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보고 있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정권 실세들이 수시로 ‘고노담화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거나 ‘고노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고노담화 작성 당시의 외교문서 등을 다시 뒤적거려 시빗거리를 찾는, ‘이중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일외교의 커다란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노담화를 뒤늦게 흔들고 흠집내서 일본이 얻는 것은 ‘성노예의 잘못을 저질러놓고, 부정직하기까지 한 일본’이라는 대외적 평가뿐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