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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08.14/대사관이 문을 닫는 이유

2014.08.14

 

 도쿄(東京)의 ‘대사관’이 문을 닫는다. ‘대사관’은 도쿄 신주쿠(新宿)구 신오쿠보(新大久保)의 코리안타운에 있는 한식당 이름이다. 대사관은 한때 한류의 상징이었다. 이 식당은 한류 붐이 본격화되기 전인 2002년 문을 열었다. 월드컵이 열린 그해, 대사관은 도쿄에 사는 한인들의 응원장소로 유명세를 탔다. 2003년 TV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을 계기로 이른바 ‘일본발 한류’가 폭발하면서 코리안타운은 일본인들로 넘쳐났다. 그 중심에 한식당 ‘대사관’이 있었다.

 

 ‘대사관’은 그 이름처럼 민간외교의 무대가 됐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여기서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여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일본의 위성방송은 물론 지상파방송들까지 이런저런 한류드라마를 틀어줬고, 많은 일본인들은 드라마에서 본 음식을 맛보기 위해 코리안타운을 찾았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신주쿠 한인거리의 분위기는 그랬다. 언제까지나 좋을 것만 같았던 코리안타운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여름의 일이었다. 얼마전 ‘대사관’ 식당에서 만난 한인회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해 8월 독도 방문 이후 한·일관계가 급격히 뒤틀리기 시작했고, 이곳의 경기도 급격히 악화됐다”고 회상했다. 그 즈음부터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일본에서 반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신주쿠 등에서는 노골적인 반한·혐한시위가 빈발했다. 한류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방송하던 한 방송국 주변에서는 ‘한류드라마 방송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후 한류드라마는 지상파 등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류드라마는 사실 일본인들이 한국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통로였다. 일본인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알아갔다. 그들은 한류드라마에서 본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대사관’을 찾았고, 코리안타운을 방문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한국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한류드라마가 줄어들면서 한류 상품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존의 한류 상품 소비자가 속속 이탈해 가는 것은 물론 한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리안타운 일대 업소들의 매출은 전성기의 4분의 1,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식당 ‘대사관’도 전성기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매출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폐점을 결정했다.

 

 일본의 많은 한인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이 거대한 ‘불황의 쓰나미’가 ‘냉각된 한·일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인들은 한·일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어떤 조치를 취하하지 않는다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인들은 “과거에는 한·일관계가 냉각되더라도 양국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바로 제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등 일정한 사이클(주기)을 보였는데 지금은 외교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계속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는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인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 당장 마주친 불황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과 일본인들 사이에 급격하게 형성되고 있는 불신의 벽과 감정의 골,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마음의 상처를 그들은 경계하고 있다. 한국과 한국인을 노골적으로 폄훼하거나 비난하는 서적과 잡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일본과 일본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이 ‘반목의 연쇄’가 멈추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회복불능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민간외교의 중심 역할을 하던 한식당 ‘대사관’은 8월15일 문을 닫는다. 닫혀 있는 한·일 사이의 문을 빨리 열어야만 한다.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