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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06.05/본질과 합의정신 버린 아베 총리

2014.06.05

 

 일본, 특히 일본인들의 장점으로 나는 본질에 충실한 것, 그리고 사람들의 합의를 중시하는 것을 들고는 한다.


 일본인들은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이름이나 겉모습보다는 사안의 ‘본질’을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어떤 때는 속도가 무척 느려 보이고, 심지어는 ‘변화’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사학의 명문 게이오대학과 와세다대학에는 지금도 ‘상학부(商學部)’라는 이름의 학부가 있다. ‘상(商)’이라는 한자가 갖고 있는 원래의 의미, 그러니까 ‘장사’에 대해 배우는 곳임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경영학’ 등 그럴듯 해보이기도 하고, 멋져보이기도 하는 단어가 일본에서 일반화된지는 무척 오래됐지만, 얼핏 보기에 촌스러워보일 수 있는 ‘상학’이라는 말을 ‘첨단’이 대우받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장사하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이라는 원래의 의미, 다시 말하면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비슷한 예로 일본의 저널리즘 분야 명문 사학인 조치대학을 들 수 있다. 이 대학에는 지금도 ‘신문학과’가 있다. 이 학과에서는 신문 이외에도 방송과 광고·홍보 등 다양한 연관 학문을 가르치고 있지만, 저널리즘의 원류인 ‘신문’을 학과 이름으로 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화가 없다. 여기서도 형식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일본 사람들의 장점 중 또 하나는 사람들 사이의 합의를 아주 중시하고, 일단 합의된 것은 잘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사회적 합의로 정한 규칙은 여간해서 어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평판, 이른바 ‘여론’을 지극히 많이 의식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특징이다. 일본사람들이 남과 다른 것, 도드라진 것, 튀는 것 등을 유독 싫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몇 가지 정책을 보고 있으면, 본질에 충실하고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의 장점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베 정권은 얼마 전 일본의 무기가 세계로 수출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해 ‘무기수출 3원칙’을 전면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무기수출’이라는 말을 살짝 떼어버리고 거기에다 ‘방위장비이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민들 앞에 내놨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택한 이 절묘한 ‘네이밍(이름짓기)’을 통해 아베 정권은 결국 무기수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한 대학 교수가 신문에서 “매춘의 죄악감을 원조교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꾼 것과 같다”며 본질에 대해 눈 감고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정권의 처사를 강력히 비판한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의 해석 변경 문제도 그렇다. 아베 총리의 말대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국제사회를 위해, 그리고 일본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국민의 뜻을 물어 당당하게 헌법을 바꾸면 된다. 그것이 바로 본질과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의 정신일 터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구성한 자문그룹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헌법에 대한 해석을 바꿔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국가의 운명과 성격을 뒤바꿀 수 있는 중대사안을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


 

 일본이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왜 본질과 합의를 무시한 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그럴듯한 업적을 바탕으로 장기집권을 하고자 하는 아베 총리 개인의 초조함이 단순하게 표출된 것일 뿐일까, 아니면 일본 사회 전체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정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