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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04.24/한국은 삼류국가?

2014.04.24

 

 몇 년 전 러시아의 한 지방 도시에 갔을 때 일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동아대’라는 행선지가 적혀 있는 시내버스가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지 가이드는 한국에서 10년 이상 운행되다 중고로 팔려온 것이라고 했다. ‘동아대’라고 쓰여 있는 그 시내버스는 아마도 부산에서 운행되던 것이었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한국에서 수명이 다 됐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쌩쌩하다”고 설명했지만, 검은 매연이 쏟아져나오고, 곳곳이 망가져 불안해보이는 그 시내버스를 보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과학 및 군사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왜 남의 나라에서 ‘쓰다 버린’ 중고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10년 넘게 탄 저 버스가 과연 안전할까. 도대체 이 나라의 산업구조, 사회구조에는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나라의 수준은 도대체….”

 

 세월호 사고의 충격이 한국은 물론 일본 열도까지 휩쓸고 있던 지난 22일 도쿄 시내에서 만난 한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가 던진 질문의 기저에 내가 러시아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배가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되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자동차를 탈 때도 안전을 고려해 10년 정도만 지나면 새 차로 바꾸는 것이 보통인데,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갖고 있다는 한국이 왜…. 그리고 언론의 보도를 보면 과적 등 기본적인 안전규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던데….”


 상대방을 배려해 가능한 직설적인 언사를 피하는 일본인 특유의 화법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발언 수위는 꽤 높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일본인과 세월호 사건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말에 담긴 행간의 뜻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의 말을 이렇게 번역해 봤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다른 나라에서 18년이나 사용한 중고 배를 사다가 타는지 모르겠어요. ‘돈’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할텐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안전에 관해서는 ‘기본’이 결여돼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이번 사고의 배가 ‘18년 된 중고 선박’이어서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다. 전문가들은 페리 등 대형 선박의 경우 정비와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40년, 50년 길게는 6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 국내에도 지금도 수 십 년 된 배가 곳곳에서 운항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안전’보다는 ‘돈’, 다시 말하면 ‘비용’을 우선으로 하는 ‘성장시대의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헐값에 사온 중고 배를 증축해서 정원과 화물적재량을 대폭 늘리고, 그나마 정해진 적재중량을 멋대로 초과해 짐을 싣는 행위 등은 모두 ‘돈’과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고 이후 일본 언론에서도 ‘삼류국가’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이 단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한국의 언론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런 표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인용하면서 한국의 안전의식을 지적하는 일본인들의 눈에는 안전이라는 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삼류’로 비쳐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안전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본’에 충실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또 ‘안전’에 대해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면, 대한민국은 ‘삼류국가’라는 안팎의 평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