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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나는 '아베특파원'이었다.

 2014년 4월 일본으로 부임할 때 새로 받아온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 중에 ‘ㅇ’과 ‘ㅂ’ 부분이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풋, 웃음이 나온다. ‘아베’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두드려댔으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부임 첫날 쓴 첫 기사에도 그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렇다. 나는 ‘도쿄특파원’이 아니라 ‘아베특파원’이었다.

 

 


 돌이켜보면 3년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아베의 세상’이다. 2012년말 다시 총리 자리에 오른 그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2013년말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아베 극장’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고노담화의 뼈를 발라낸 아베담화, ‘전쟁하는 나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그리고 이를 반영한 안보법 제정 등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때마다 한국 언론은 ‘아베의 폭주’를 운운하면서 떠들어댔고, 그 한복판에 나도 있었다. 한국 사회는 ‘아베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일본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자판의 ㅇ과 ㅂ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반질반질해졌다.

 아베의 기세는 세계로 향했다. 지구를 부감(俯瞰)한다는, 그의 광폭 행보는 세계를 넘나들었다. 버락 오바마를 히로시마로 불렀고, 자신은 하와이의 진주만에 가서 ‘화해의 제스처’를 연출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 그를 세계는 주목했다.

 


 

 그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도쿄 등 일부 대도시와 대기업을 위한 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학교 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의 취업률은 97%를 넘었다. 2015년 9월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는 경쟁 후보를 주저앉히고 ‘아베 1강’의 성을 쌓아갔다. 지난 3월 자민당은 아베가 3년 더 총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당칙을 바꿔줬다. ‘아베의 세상’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고, 국민들의 꿈과 희망은 그 배와 함께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학교 문을 나선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헬조선’이었다. 얼마전 ‘한국’이라는 배의 선장은 국민들의 힘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요즘 일본에서는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결국은) 지는 벚꽃(散る櫻殘る櫻も散る櫻)’이라는 구절이 회자되곤 한다. 에도시대의 한 승려가 남긴 이 말은 고령사회의 아픔을 그린 소설 <끝난 사람(終わった人)>에 인용돼 화제가 됐다. ‘지금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진다’, 대략 그런 뜻이다.

 

 그렇다. 결국 다 진다. 그리고 모든 권력자는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5년 임기정도는 무난하게 채울 것 같던 박근혜는 4년만에 권좌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의 경쟁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진핑이나 블라디미르 푸틴도 결국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다. 국제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놓고 있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아베는 어떨까. 60%대를 유지하던 그의 지지율이 ‘아키에 스캔들’ 이후 흔들리고 있다. 아베가 이 난관을 극복하고 2021년까지 총리 자리를 지킬 수도 있고, 그 전에 강판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아베를 뛰어넘어야 한다. 아베와 일본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우리는 그 테두리 안에 갖히게 된다. 일본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일본 그 너머의 세상을 보고 걸어가야만 한다. ‘지금의 일본은 5년 후, 10년 후 한국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오래전 어떤 학자의 분석은 지금도 자주 맞아떨어진다. 아베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을 갖는다면, 지금의 일본을 통해 우리의 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도쿄특파원들의 자판은 ㅇ과 ㅂ이 아닌, 다른 글자가 더 반질반질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베특파원’은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