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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아베가 소녀상을 세운다면...

 평화의 소녀상. 옛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의 인류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극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소녀상이 한국은 물론 미국·호주 등 해외 곳곳에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도 설치됐다. 일부 지방의원들은 독도에도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도쿄를 전전하고 있는  '소녀상의 원형'


 하지만 일본에서는 소녀상을 볼 수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일본에도 소녀상이 딱 하나 있기는 있다. 조각가 김서경·김운성씨 부부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 때 맨 처음 제작한 소녀상이 현재 도쿄에 있다. 김씨 부부가 ‘소녀상의 원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소녀상은 그러나 언제 어디서 가해질지 모르는 테러의 우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의 집 서재 등에 숨겨져 있다.

 소녀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이야말로 소녀상의 건립이 꼭 필요한 곳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어디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기념물)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독일이 베를린 도심에 홀로코스트기념관을 건립하고 자신들이 과거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계속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은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설치하기는

커녕 피해국가인 한국 등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최근 부산 일본총영사관에 소녀상이 설치된 이후 주한 일본대사 등을 일시 귀국시키는 강공을 이어가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15년 12월 한·일 합의대로 10억엔(약 103억원)을 출연한 것 이외에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총리 명의의 편지 발송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베 내각의 각료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이어가는 등 피해자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일본의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위안부 문제의 가해국인 일본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거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아베 정권의 그런 태도가 ‘새로운 소녀상’을 부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소녀상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소녀상이야말고 일본이 감추고자 하는 과거 잘못을 다시 들춰내고 반성을 촉구하는 데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비인도성 등 역사가 담고 있는 진실을 아베 정권 측에 다시 각인시켜주는데 소녀상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타국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골몰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자국에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세울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소녀상의 철거만 무작정 요구하는 아베 정권의 ‘야리카타(일처리 방식)’로는 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소녀상을 없앨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상에 위안부 소녀상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일본이 먼저 나서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을 자국의 어딘가에 설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의 한 시민운동가는 적합한 설치 장소로 우에노(上野)공원·도쿄(東京)역 앞·일본국회의사당 앞 등을 거명했다.

 아베 총리 등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 메모리얼 앞에서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이나 미국 등 각국에서 일고 있는 소녀상 건립 붐은 자연스럽게 누그러질 것이다. 그리고, 일본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도 보다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 ‘평화의 메신저’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