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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나는 봤다, '두 얼굴의 일본'

세계적으로 일본은 ‘치안이 좋은 나라’로 꼽힌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들은 심야에도 별다른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일본의 거리를 좋은 점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치안이 실제로 좋기만 할까. 요즘 벌어지는 야쿠자(폭력조직) 사이의 분쟁 상황을 안다면, ‘치안이 좋은 일본’이라는 말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이바라기(茨城)현 미토(水戶)시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경찰관·교직원·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단등교를 하고 있다.  


 이바라기(茨城)현 미토(水戶)시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최근 경찰관·교직원·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단등교를 했다. 통학로에 위치한 야쿠자의 사무실에서 조직 간 충돌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총격 사건이 발생했기 대문이다. 이 조직의 사무실 건물에서는 5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고, 일부 총탄은 유리를 관통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기까지 했다. 사무실 주차장에서는 경쟁 조직의 조직원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주차돼 있던 다른 트럭을 들이받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의 한 초등학교 통학로에서도 어린이들이 야쿠자의 충돌을 우려해 먼길을 돌아 통학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쿠자의 충돌 때문에 주민들이 대낮부터 공포에 떠는 일은 요즘 일본 전국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일본 최대의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에서 고베야마구치구미(神戶山口組)가 떨어져 나간 뒤 양측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양측의 충돌이 총격전 양상으로까지 번지면서 뒷골목의 권총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언제 불상사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1980년대 발생한 야쿠자의 분열 당시 조직간의 충돌로 야쿠자 조직 관계자 25명이 숨지고 시민·경찰관 등 70명이 다치는 사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일반 시민의 희생은 막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인 일본 경찰은 충돌 사고가 터지고 난 뒤 현장으로 달려가는 ‘뒷북치기’만 반복하고 있다.

 많은 세계인들은 일본이 만든 물건은 무조건 좋고 안전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일본인의 ‘장인정신’이 빚어낸 물건은 품질이 우수함을 물론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쓰나미로 후쿠시마(福島)원전이 폭발하면서 그런 믿음은 완전히 깨졌다. 후쿠시마원전을 운영해온 전력회사나 이를 관리해온 정부나 ‘적당주의’가 만연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고, 일본의 원전은 안전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신화’는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전후 일본은 ‘헌법9조’로 대변되는 ‘평화헌법’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일본의 움직임에 끊임없이 우려의 눈길을 주는 상황에서도 국제사회는 일본이 ‘평화국가의 길’을 걷는 것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으로 접어든 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 타국과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길로 접어드는 등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반영한 안보법이 29일 시행에 들어가면서 일본의 감춰져 있던 또 하나의 얼굴이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올여름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이 승리하는 경우 일본은 개헌을 통해 군대를 보유하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길로 들어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이는 얼굴’ 이면에 감춰진 얼굴을 파헤쳐 봐야 한다.

 늘 조용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일본의 골목길에서 야쿠자의 총격전이 빚어지고 있듯이, 지금은 조용한 양처럼 보이는 일본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언젠가는 호랑이가 돼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