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5주년(11일)을 앞두고 일본 후쿠시마(福島)지역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처음에 보통의 일본인들처럼 입을 잘 열지 않았고, 속마음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 등 원전사고의 책임자들에 대한 비판은 한결같이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사능 오염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곧 좋아질 것”이라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어 “곧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표시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후쿠시마 현지에서 반정부 시위같은 것이 열린다는 소식은 없었다. 도쿄(東京) 등 대도시에서 환경단체 등에 의한 반원전, 반정부 시위가 가끔 열리지만 현지는 조용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 지역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그런 궁금증이 풀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불만같은 것은 당초부터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빗장이 하나둘 풀리면서 그동안 하고 싶어하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머릿속에는 지금 도쿄올림픽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머리에서 우리 후쿠시마 사람들은 이미 잊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우리는 피해자이고 정부와 도쿄전력은 가해자입니다. 그런데 그 가해자들이 ‘이제 오염물질이 대부분 제거됐으니 안심하고 고향으로 가서 살아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후쿠시마현 가쓰라오무라(葛尾村)에 있는 자신의 집을 놔두고 외지에서 피난생활하고 있는 60대 주민의 입은 말이 길어질수록 거칠어졌다. 그의 말에는 지난 5년 동안 쌓인 아베 정권에 대한 강한 반감이 담겨 있었다.
“지금 후쿠시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작업은 마치 이발을 하면서 이발기계로 목주변 머리만 쭉 잘라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드넓은 야산의 오염물질은 그대로 놔둔채 주거지나 도로에서 20m 떨어진 곳까지만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제염 작업 흉내만 내고 있는 거죠.”
고향 이타테무라(飯館村)를 떠나 외지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일본 정부의 행태를 아주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면서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혼네는 ‘본심’으로, 다테마에는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혼네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일본인들의 특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일본인들이 본심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아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큰 일본인들이 정부 등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에 인색한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번에 후쿠시마를 돌아보면서 원전사고라는 대재앙이 그런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자신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들은 낯선 외국 기자 앞에서 혼네를 쉽게 드러냈다. 그리고 말없이 믿고 따르던 정부에 대해서도 결국은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5년전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는 그곳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외지를 떠도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긴 깊은 상처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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