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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모태서민'이 본 서민 교수, "너무 순진하다"

 신문은 물론 책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붐비는 일본의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요즘 들어 읽을거리가 특히 풍성해진 경향신문의 콘텐츠를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재미는 색다르다. 특히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의 글은 ‘모태 서민’인 나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준다. 언제나 조용하기만 한 일본의 지하철에서 그의 글을 읽다가 웃음을 터뜨려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있다.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서민교수 블로그 캡처)


 얼마 전에는 서민 교수의 ‘당연한 일에 감동하는 사회’라는 글을 읽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삼권분립’을 내세우는 것은 몸이 아파 병원에 온 사람을 의사가 진료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인데도 여기에 감동하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한 글이었다.

 이 글을 읽다가, 이 ‘당연’이라는 말에 나의 눈과 마음이 한참 멈춰섰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당연한 것’의 개념이 이미 바뀌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상당수 일본인들도 법안 처리와 관련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삼권분립을 외치면서 청와대에 대항하고, 거기에 한국 국민들이 감동하는 모습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내정에 관한 사안이지만, ‘삼권분립’을 내세우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기묘한 일을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일본인들은 특히 일본과 관련된 최근의 몇 가지 일에서 한국이 ‘삼권분립’ 같은 개념은 이미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것이 아니냐는 눈길을 주곤 한다.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일 행적 관련 기사로 기소된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가 선처를 바란다는 서한을 제출한 사실, 그리고 이후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실 등을 접하면서 사법에까지 ‘청와대의 힘’이 미쳤을 것으로 보는 일본인들이 많은 것 같다. 일본 측에서 선처해 달라는 요청이 왔고 이를 법무부에 전달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일본인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서도 ‘청와대의 의향’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일본인도 많다. 일본인들은 “6년을 끌어온 판결이 왜 하필 이 시점에 나왔느냐”는 시각으로 거두지 않고 있다.

 두 사건의 처리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한·일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뭔가 찜찜하다는 표정들이다. 특히 산케이신문 기자 기소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그동안 사법부의 ‘독립’을 누차 강조해왔기에 그런 찜찜함이 더욱 커지는 모양이다.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일본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이은 ‘제4부’로 일컬어지는 언론까지 행정부의 권력이 완전히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믿는 외국인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모든 일은 지나치게 강해진 행정부, 다시 말하면 청와대에 의해 빚어진 일로 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을 하겠다는 국회의장을 대놓고 압박해 가는 절대 권력을 보면서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한국은 삼권분립이나 언론자유 같은 것은 ‘당연히 없는’ 나라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삼권분립과 언론자유의 가치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 국민 중에 실제로 삼권분립과 같은 기본 이념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쩌면 서민 교수는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일’이라고 우기는 이 시대의 마지막 서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다 건너 이국 땅에서까지 그의 글이 더욱 기다려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