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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환갑' 맞은 일본 자민당의 맨얼굴

 일본의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이 최근 ‘환갑’을 맞았다. 자민당은 1955년 11월15일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치면서 탄생했다. 자민당은 약 4년2개월의 야당 기간을 제외한 56년 간 일본을 통치하면서 22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전후 일본 정치는 사실상 이 자민당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일본 민영방송 TV아사히의 간판 뉴스 프로 '보도스테이션'(생방송)에 출현한 해설자는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가  "방송국 회장 압력으로 오늘부터 못 나오게 됐다"면서 '나는 아베가 아니다(I am not Abe)'라고 프린트한 종이를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이고 있다.


 자민당은 여러 파벌이 합해진 ‘파벌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각 파벌은 서로 총리를 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파벌 정치는 ‘돈정치’의 온상이기도 하지만, 당이 다양한 소리와 색깔을 낼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정 인물이나 파벌의 독선·독주는 경쟁 파벌에 의해 제동이 걸린다. 강한 일본을 주창하면서 주변국을 자극해온 강경파의 움직임은 당내 온건파에 의해 견제되기도 했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의 자민당은 비교적 폭넓은 프리즘을 갖추고 있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자민당이 때로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정권을 내주기도 했지만, 바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다양성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민당을 ‘국민정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자민당이 환갑을 앞둔 최근 몇년 사이에 급격히 변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현재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중의원에서 3분의 2 의석을 점유하고, 참의원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의석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의 자민당’은 현재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자민당이 올해 집단적 자위권을 반영한 안보법을 국민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개정해 버린 것도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자민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 ‘반대의 외침’ 같은 것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 상황이 됐다.

 자민당은 그래서 다양성이 사라진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민당은 요즘 창당 이래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경화’는 멈출줄을 모르고 있다. 아베 총리와 그의 주변 인사들은 하나같이 강한 내셔널리즘으로 무장돼 있다. 자민당 안에서조차 당이 ‘단색(單色)’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한탄이 쏟아져나오는 이유다.

 당의 운영방식은 어떤가. 지난 9월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출마 의욕을 보이던 노다 세이코(野田聖子)전 총무회장은 ‘1강’인 아베 총리 측의 견제로 출마서류 조차 내보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 환갑을 맞은 자민당이 사실상 ‘독재정당’이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환갑’을 맞으면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그 성숙은 60년 성상을 거치면서 경험한 온갖 성공과 실패, 그 속에서의 반성이 가져온 결과물일 것이다. 자민당이 맞이한 환갑은 과연 어떤 것인가. 거기에 반성과, 그를 통한 성숙은 있는가.

 창당 60주년을 맞은 자민당이 ‘기념 사업’처럼 들고 나온 것은 ‘역사검증’이라는 사실상의 ‘도발’이었다. 자민당은 총재 직속 기관으로 설치하는 ‘전쟁 및 역사 인식 검증위원회’를 통해 도쿄재판 등의 역사를 검증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일본의 과거 잘못’에 관해 세계적으로 확립돼 있는 역사를 무력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반성과 성숙이 아니라 도발을 선택한 자민당이 노리는 것은 내년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헌법을 바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반성 없는 독재정당으로 변하고 있는 자민당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미 브레이크를 상실한 자민당의 10년 후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자민당이 맞이하는 ‘칠순’의 모습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