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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고래고기를 좋아하는 일본인, 그리고 국제법

 지난해 4월 일본 지바(千葉)현의 최남단 미나미보소(南房總)시에 있는 와다(和田)마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와다마을은 일본의 4대 고래잡이 기지 가운데 한 곳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일본의 고래잡이(조사포경)는 과학적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포경의 중지를 요구하는 판결을 내린 직후여서 마을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와다마을의 고래해체장을 견학하는 어린이들


 마을 관문인 JR와다우라(和田浦)역에는 ‘일본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포경이 시작됐다’는 내용의 안내판과 고래 관련 사진 등이 가득 전시돼 있었다. 거기에서 만난 상당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고래고기를 먹는 것은 대대로 이어온 전통이자 고유의 식문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ICJ의 판결은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ICJ의 판결은 일본의 고래잡이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포경규제조약에 따라 1986년 이후 상업 목적의 포경이 전면 금지돼 있는 상황에서도 “생태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남극해와 북서태평양에서 밍크고래 등을 잡아왔다. ICJ는 “일본이 남극해에서 진행하고 있는 포경을 금지해 달라”는 호주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 측에 대해 “남극해에서의 고래잡이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ICJ의 판결은 일본의 고래잡이가 연구나 조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업용’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일본이 과학적인 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용고기를 확보하기 위해 고래를 잡아온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ICJ의 이 판결 이후 일본의 태도가 바뀔 것을 기대했다. 최근까지 일본이 남극해 등에서의 조사포경에 나서지 않자, 일본이 세계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런 ‘순수한’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다.

 

일본 지바현 와다마을의 식당에서 팔리는 고래고기 요리


 일본은 지난 1일 남극해에서 조사포경을 하게 될 포경선 3척을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항에서 출항시킴으로써 다시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앞서 일본 수산청은 잡아들이는 밍크고래의 수를 예전의 약 3분의 1 수준인 연간 333마리로 제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계획을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제출했다.


 일본의 이런 행위는 국제사회의 룰을 거스르는 것이다. IWC는 일본 측의 조사포경을 용인하지 않았다. 또 향후 열리는 총회의 심의가 열릴 때까지 조사포경을 재개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IWC 과학위원회에서는 일본 측의 ‘고래 333마리 포획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행동은 당장 국제사회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지난 7일 호주 정부가 항의 성명을 냈고, 한 환경단체는 ‘밀렵꾼’을 운운하면서 일본을 비판했다. 일본 안에서도 고래잡이 강행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향후 해양생물자원에 관한 분쟁에 한해서는 ICJ에 제기되는 소송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정리해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제사회의 요구에 버티기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일본 외무성과 법무성이 ICJ 패소를 계기로 앞으로 국제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궁리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해양자원을 보호하자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국제소송에 대응하는 조직과 연구모임을 만들어 ‘재판 승리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남중국해 등에서의 해양진출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고 비판하면서 국제사회의 호응을 촉구해 왔다. 자국 안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고래잡이 배를 남극해로 내보낸 일본 정부에게 ‘국제법’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