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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시청률을 얻고, 신뢰를 버린 JTBC

일본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시청률 경쟁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5대 민방과 NHK 등이 벌이는 시청률 다툼은 차라리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정도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달 8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쟁’ 수준의 시청률 경쟁을 상징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03년이다. 그해 10월 일본의 대표적인 민방인 니혼TV의 한 프로듀서는 자신이 관여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시청률 조사대상자를 매수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다.

 

 이 프로듀서는 흥신소를 통해 알아낸 시청률 조사대상자에게 상품권 등을 주고 자신이 관여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작비를 부풀리면서까지 마련한 돈으로 진행한 그의 ‘시청률 조작’이 실제 시청률에 미친 영향은 그러나 최대 0.5%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방송계에서는 이밖에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의 내용을 조작하는 일도 여러 건 발생한 적이 있다.

 일본 방송국들은 이처럼 방송의 수익과 직결되는 시청률에 극단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청자들과의 신뢰를 쌓기 위한 부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어떤 논란이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철저한 자체조사를 통해 그 경위를 밝히고 사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방송은 그 존재 의미도 없을 뿐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청률도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지난해 NHK가 방송한 <클로즈업 현대>라는 보도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이 연출됐다는 논란이 최근 빚어지자 NHK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조사를 실시한 뒤 상세한 제작 경위는 물론 관련자 15명에 대한 징계 결과를 발표했다.

 

 민방인 TV아사히도 자사의 보도프로그램인 <보도스테이션>에서 최근 발생한 출연자의 돌출발언 사고와 관련, 자체조사를 실시한 뒤 사죄하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조치를 발표했다. 이런 조치는 모두 공공재인 전파를 활용하는 방송은 시청자의 신뢰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JTBC가 경향신문에서 ‘훔쳐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육성 인터뷰를 공개한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이 4%대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방송된 <JTBC 뉴스룸> 2부는 4.286%(전국 유료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1부의 시청률이 2.327%였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 포인트가까이 상승한 ‘대박’임에 틀림없다.

 현재 한국을 떠나 있는 나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도했다’고 주장하는 JTBC 측이 자신들의 행위를 ‘위대한 저널리즘의 승리’라고 추켜세우면서 자축했는지, 아니면 ‘시청률 대박’이라는 결과를 놓고 환호성을 올렸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한국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도 JTBC가 시청률이 아니라, 시청자의 신뢰를 중시해온 방송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JTBC의 이번 행위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JTBC가 이번 일을 통해 4%대의 당일 시청률은 얻었겠지만, ‘도둑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도덕한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신뢰’의 상당부분을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JTBC가 경향신문의 녹음파일을 입수한 경위를 보면, 누구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JTBC 측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경위조사를 하겠다거나, 진심이 담긴 사과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한국에도 이제 믿을만한 방송이 하나 나왔다’는 평가까지 받아온 ‘손석희의 JTBC’가 단순한 시청률 이상의 소중한 가치인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