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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주말기획

2014.05.24 초고령화시대 일본...'노인돌봄' 아이디어 속출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자를 어디에 다 수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세계 그 어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 일본이 노인들을 위한 ‘돌봄(개호) 서비스’ 문제로 큰 고민에 빠져 있다. 당장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 52만2000명은 들어갈 시설(상시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시설인 ‘특별양호노인홈’)이 없어 ‘입소 대기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업계와 학계에서 새롭게 개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 주택가의 한 빈집에 꾸며진 고령자  돌봄 서비스 시설 ‘자와혼포 데일리 서비스 패밀리’에서 노인들이 ‘틀린 그림 찾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설의 직원인 이케다 유다이(25·왼쪽에서 2번째)는 거실 테이블에서 노인들을 돌보며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아, 아∼ 강물의 흐름처럼….”
 지난 13일 오후 3시 도쿄(東京)도 고가네이(小金井)시 주택가의 한 가옥에서 기타 소리와 함께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집안 거실의 탁자 앞에 모여있던 70~90대 노인 10명이 가수 지망생이자 이 시설의 직원인 이케다 유다이(池田雄大·25)의 기타 연주에 맞춰 신명나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친 나미키 노리코(79)는 “무엇보다 내 집과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어서 좋다”며 “여기에 오고나서부터는 늘 웃으면서 생활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관 앞에는 문패 대신 ‘개호(돌봄)시설 자와혼포(茶話本鋪) 데일리 서비스 패밀리’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시설 이름의 ‘자와(茶話)’는 ‘집 거실 등에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정담을 나눈다’는 뜻이다.

 “주택가의 빈집을 활용해 고령자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예요. 노인들에게 자신의 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보다 섬세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요.”

 이 시설을 운영하는 마에다 히로타가(前田紘孝) 대표가 시설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 10명은 치매와 같은 증상으로 식사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 10명에게 ‘1대1 수준’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에다가 별도로 운영하는 연예프로덕션에서 가수 교육을 받고 있는 이케다는 이곳에서 노인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그는 “집에서 친할머니나 친할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수 등 연예인에게 꼭 필요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 시설에 들어오는 노인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하루 7500엔(약 7만5000원)에서 1만3000엔(약 13만원)의 비용을 낸다. 이 가운데 본인 부담은 10%뿐이고 나머지는 국가가 부담한다. 마에다 대표는 “매월 3000만엔(약 3억원) 정도의 수입 가운데 2000만엔(약 2억원) 정도가 급여 등 비용으로 들어간다”며 “건물 신축 비용 등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흑자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시설은 빈집을 활용한 돌봄 서비스 사업을 전국 단위로 전개하고 있는 (주)일본개호복지그룹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열었다. 개호복지그룹은 일본 전국에 빈집을 활용한 돌봄 서비스 시설 796개를 보급했다. 후지타 히데아키(藤田英明·38) 대표는 “요즘 농촌이나 도시 구분 없이 빈집이 늘어나고 있는 점에 착안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고령자 시설 부족 문제는 물론 빈집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루 단위의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은 물론 장기 숙박을 하는 노인에게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시설당 10명 이상은 받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전 10시 도쿄도 가쓰시카(葛飾)구 도쿄이과대학 기계공학과의 연구실에서는 이 학과 고바야시 히로시(小林宏) 교수가 개발한 ‘머슬 슈트(muscle suit)’의 시연회가 열렸다. ‘머슬 슈트’는 중증 장애를 가진 노인 등을 돌보는 사람이 마치 옷(슈트)을 입듯이 몸에 장착하면 커다란 힘을 보충해 줌으로써 힘을 덜 들이고도 일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종의 로봇이다.

 

 

도쿄이과대학 기계공학과  고바야시 히로시(小林宏) 교수가 최근 개발한 ‘머슬 슈트(muscle suit)’를 직접 착용한 뒤 20㎏의  짐을 들어올리고 있다.무게가  5㎏인 이 기구를 착용하고 물건을 들면 30㎏의 물건을 쉽게 들 수 있다.

 

 머슬 슈트를 직접 착용하고 시연에 나선 고바야시 교수는 “입이나 턱 등을 이용해 스위치를 누르면 로봇이 작동하면서 노인·환자 등을 들어올리는 사람에게 힘을 보태주도록 고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게가 5㎏인 이 기구를 몸에 장착하면 30㎏의 무게를 들어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물론 근력이 약화된 노인 등이 이 기구를 장착할 경우 일상 생활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 전문 제조업체를 통해 최근 생산에 성공한 이 기구는 가격이 30만~80만엔(약 300만~80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해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 기구를 제조하고 있는 (주)기쿠치제작소는 올해 안에 1000대 정도를 생산해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100여대는 이미 보급이 완료됐다.

 고바야시 교수는 “그동안 완전한 사람 형태의 로봇이 대기업 등에서 여러차례 개발됐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서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장에 도입하기는 어려웠다”며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로봇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돌봄서비스와 관련된 로봇 시장의 규모는 2020년에 350억엔(약 3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앞으로 돌봄서비스 시장에서 로봇의 역할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빈집’을 활용한 고령자 돌봄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일본 (주)개호복지그룹의 후지타 히데아키(藤田英明·38) 대표는 “돌봄 서비스를 원하는 고령자들을 인터뷰해보면 대부분 자신의 집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집과 비슷한 곳에서라도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빈집을 활용한 시설은 그런 고령자들에게 최고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주)개호복지그룹의 후지타 히데아키(藤田英明·38) 대표

 

 그는 이어 “특히 치매 환자 등이 자신의 집과 전혀 다른 시설에 들어가는 경우 일종의 ‘심리적 부적응’ 상태에 빠지면서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한 뒤 “환자가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빈집을 이용한 시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후지타 대표는 지난 13일 오후 도쿄(東京)도 고가네이(小金井)시의 공민관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빈집을 활용하는 돌봄 서비스 시설은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요양원 1개를 신축하는데 평균 8억엔(약 80억원)이 소요되는데, 그 가운데 상당액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며 “빈집을 이용하는 경우 리모델링 비용이 일부 들기는 하지만, 신축과 비교하면 사실상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지타 대표는 “국가가 부담하는 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요즘 중국·말레이시아·대만 등 아시아권은 물론 유럽지역에서도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집을 활용한 시설의 경우 의료서비스가 부족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는 “시설 안에서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응급환자 등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의 의료기관과의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 놨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아직 빈집과 관련된 정부 등의 통계와 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어 아쉽다”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빈집 은행’을 만들어 빈집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후지타 대표는 “치매와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고령자의 상당수가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등 염세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분들에게 ‘내집 같은 분위기’를 제공하면서 ‘살고 싶다’는 의욕을 불어넣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