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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주말기획

2014.05.10 '포경금지' 무시, '고래잡이' 집착

 지난달 19일 낮 일본 도쿄 동쪽에 인접한 지바(千葉)현의 최남단 미나미보소(南房總)시 와다우라(和田浦)역. 이 역은 일본 4대 고래잡이 기지 가운데 하나인 와다(和田) 마을의 관문이다. ‘고래전시관’처럼 꾸며진 역 대합실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포경(고래잡이)이 시작됐다’고 시작하는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역 대합실은 이런 안내판과 고래 관련 사진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와다마을 포구의 고래해체장에서 고래해체 전문가들이 고래의 각 부위를 발라내는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고래자료관 제공


 “일본인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고래고기를 먹는 것은 대대로 이어온 전통이고, 고유의 식문화입니다.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고래잡이와 고래 관련 식문화를 보는데 불만이 많습니다.”

 

와다마을 고래해체장에 견학온 어린이들이 잡혀온 고래를 직접 만져보면서

 고래공부를 하고 있다. 고래자료관 제공

 마을 입구에서 만난 60대 주부는 남극해 일대에서 진행해온 일본의 조사포경을 금지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날 일본 정부가 북서태평양 일대에서의 조사포경은 계속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다른 주민은 “한국에서는 개를 먹고 호주에서는 캥거루를 먹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고래를 먹는 것인데…”라며 일본의 조사포경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서양인들의 시각을 경계했다.

 

 

 

와다마을 포기에 있는 고래해체장이 텅 비어있다.

고래를 잡는 6월 30일부터 8월31일까지만 운영된다. 


 마을 안으로 10여분쯤 들어가자 거대한 고래뼈 형태의 대형 조형물이 서 있는 고래자료관이 보였다. 고래자료관이 들어서 있는 ‘에키노미치 와다우라’(도로변에 있는 일종의 휴게소) 내 식당에서는 고래고기 정식에서부터 고래고기 회와 튀김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식당 관계자는 “주말에는 하루 평균 200여명의 손님이 식당을 찾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고래고기를 주문한다”며 “최근들어 고래잡이가 금지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리 고래고기를 먹어둬야겠다며 달려오는 손님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식당 종업원 아시다 미카(芦田實華·47)는 “이 지역에는 고래를 통해 먹고사는 사람이 많다”며 고래와 관련된 최근의 움직임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마을에서는 20여개의 식당과 민박집이 북서태평양 일대는 물론 남극해 일대에서 잡은 고래고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


 와다마을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고래공부’를 하면서 성장한다. 이 마을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만 되면 동네 포구에서 열리는 ‘고래 해체(잡은 고래를 부위별로 발라내는 작업)’를 직접 견학하면서 고래와 관련한 문화를 배운다. 또 이 마을 학교 급식에서는 수시로 고래고기가 나온다. 고래자료관을 관리하는 고하라 야스노부(小原靖喜·60)는 “고래잡이는 일본 고유의 식문화”라고 전제한 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계인들로부터) 고래잡이를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고래산업을 이끌고 있는 고래잡이 업체 ‘가이보(外房)포경’ 관계자들은 올해 이곳에서 예정돼 있던 26마리의 고래잡이가 가능하게 됐다는 소식이 이날 전해졌지만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상세한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한 한 직원은 “고래를 잡지 못하게 된다면 한마디로 곤란하다”고 말했다.


 와다마을의 포구에 있는 고래해체장은 텅 비어 있었다. 포구 근처 주택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주민들은 4대 고래잡이 기지의 옛 명성을 다시 살려나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6월20일부터 8월31일까지 재개되는 고래잡이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우리는 고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 고래심줄 같은 일본의 집착

 

 국제사회가 일본에 고래잡이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남극해에서의 포경을 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린 지 1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서태평양에서 ‘조사’라는 이름의 고래잡이를 나서는 등 국제사회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내년 이후에는 남극해에서의 포경도 계속할 태세다.

고래마을의 '에키노미치와다우라'의 식당에서 팔고 있는 고래고기 요리.

고래고기를 이용한 초밥,회,튀김, 도시락 등 다양한 요리가 제공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지난 3월31일 “일본이 남극해에서 진행하고 있는 포경을 금지해 달라”는 호주 정부의 제소를 받아들여 일본 측에 “남극해에서의 고래잡이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포경규제조약에 따라 1986년부터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됐지만 “고래의 생태 등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남극해와 북서태평양에서 밍크고래 등 각종 고래를 잡아왔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일본의 이런 고래 포획 행위가 연구나 조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업용’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일본이 남극해에서 매년 잡아들이는 밍크고래의 수가 850마리로 너무 많은 점과 2005년 이후 실시한 고래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고래를 포획하면서도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 결과가 거의 내놓고 있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이 과학적인 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고래를 잡는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고래고기가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 일본 전국의 주요 고래잡이 거점은 물론 도쿄 등 상당수 지역에서 고래고기가 횟감이나 요리재료로 팔리고 있다. 고래고기 요리를 내는 음식점도 많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일본 측을 겨냥해 의미있는 주문을 하나 했다. ‘북서태평양에서의 고래잡이도 남극해 관련 판결을 고려해 해주기 바란다’고 한 것이다. 북서태평양은 이번 재판의 대상 해역은 아니지만 남극해 판결의 취지를 살려 이 해역에서의 고래잡이도 자제해 달라고 한 것이다.

관람객들이 와다마을의 ‘고래자료관’ 앞에 세워진 흰긴수염고래의 뼈 조형물을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직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도 곧 고래잡이가 중단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최종 판단은 그게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8일 “북서태평양에서의 조사포경을 올해도 계속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 측은 올해 북서태평양 일대에서 조사포경을 계속할 것이며, 이를 통해 210마리 정도의 고래를 잡아들이겠다는 포경계획도 내놨다. 당초 330마리로 돼 있던 고래포획 계획을 수정해 그 수를 약간 줄였을 뿐이다.

와다마을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고래고기 급식을 먹고있다. 고래자료관 제공


 일본 측은 바로 고래잡이 배를 출항시켰다. 일본 포경선은 지난달 26일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 앞 바다로 나갔다. 현지 주민들은 재개된 고래잡이를 크게 반겼고, 출항한 포경선은 밍크고래 1마리를 잡아오는 ‘전과’를 올렸다. 지난달 말에는 이렇게 잡은 고래고기 240㎏이 경매됐다. 부위에 따라 1㎏ 당 2500~5000엔(2만5000~5만원)에 팔렸다. 일본 측은 “잡은 고래고기를 부산물로 팔아 조사·연구비용을 충당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다시 포경에 나서면서 고래잡이를 반대하는 단체 등이 나타나 방해활동이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반포경단체 등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 측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포획한 고래를 해체한 뒤 어떤 먹이를 얼마나 먹고 있는지 분석해 고래의 생태를 밝혀내는데 활용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올해만 이 일대를 포함한 북서태평양 일대에서 100마리의 밍크고래를 잡아들이기로 했다.

 일본의 포경에 대한 ‘집착’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남극해에서의 포경과 관련해 “올해는 포경을 하지 않고 (고래의 서식상태 등에 대한) 관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내년도부터 남극해에서의 포경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2015년 이후에는 북서태평양은 물론 남극해에서도 새로운 포경 계획을 세운 뒤 이를 국제포경위원회에 제출해 조사포경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농림수산성 장관은 “국제법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고래류에 대한 포획 조사를 실시하고 향후 상업포경까지 지향한다는 기본방침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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