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 TV를 켜기가 무섭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나오는 화면에 ‘호스트바’ 출신으로 소개되는 남성의 얼굴이 함께 등장하고 그 사이에 최순실이 보인다. 정유라가 말을 타고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기 위해 대형 도표가 동원된다. 진행자 등 출연자들은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겠다며 혀를 찬다.
대한민국이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화가 치민다. 특히 일본인들과 함께 TV를 볼 때는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은 ‘더러운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그래서 채널을 돌려보지만, 5개 주요 민방은 물론 공영방송인 NHK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루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2014년 4월 도쿄(東京)로 부임한 직후에도 그랬다.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방송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였다. 한 나라의 최고책임자가 그 엄청난 사고 발생 이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 대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논조였다. 분(分)·초(秒) 단위로 공개되는 일본 총리의 움직임과 비교하는 보도가 쏟아진 것도 이때다.
“한국의 망신은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급 인사들이 다 시키는군요. 한국 국민들은 훌륭한데….”
얼마전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중국 등 세계 각국의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외국 언론인이 최근 몇년 사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피넛 리턴’. 2014년 12월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 의해 발생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일본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사건 당시 일본의 신문·방송 등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관행화된 경영세습, 그리고 오너들의 갑질 등 한국 대기업의 전근대성에서 찾았다. 방송 출연자의 말이나 기사의 행간에서 ‘형편없는 한국’에 대한 조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느낀 모멸감 역시 잊을 수가 없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 파문 때는 또 어땠나. 사건의 진상을 묻는 일본인에게 파문에 대해 설명하는 것 자체가 창피했다. 사무실을 찾은 일본 기자와 함께 늙은 재벌 오너의 그릇된 욕망을 마구 비판했지만, 쓰린 속은 다스려지지 않았다.
조현아, 이건희, 그리고 박근혜….
최근 몇년 사이 해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을 창피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얼굴들이다. 해외의 생산현장에서, 무역현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일그러진 리더들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정점에 박 대통령이 서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언론인 아사히신문은 최근 칼럼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권력·재벌·허영·무녀·남과 여·수험(대학입시) 등 한류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들로 점철됐다고 소개하면서 “이 나라(한국)가 안고 있는 병폐 그 자체”라고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우리 동포들의 그 간절한 호소를 못들은 척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또 하나의 죄가 추가될 뿐이다.
이런 상황을 그려본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도 하나의 거짓 없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상하게 밝힌 뒤 깨끗하게 물러난다. 그날 저녁, 한국을 걱정해온 외국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났으니,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명예도 어느정도는 회복이 되겠네요. 박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국민과 법의 심판을 받고 나서 한국 국민의 한 명으로 여생을 잘 보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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