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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개'자도 꺼내지 않은 아베

지난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 기간 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연설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타고난 정치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연설은 대중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자민당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가 쏟아낸 말들은 청중의 가슴 속을 팍팍 파고들었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앞으로도 계속 밀어달라’는 식의 연설문에 이렇다할 ‘내용’은 없었지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몇마디 단어에 실어 보내는 능력은 뛰어났다.

 지난해 그가 미국 국회에서 행한 외교용 연설과는 달랐다. 아베 총리의 당시 영어 연설은 사실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부인 아키에 여사에 따르면 그는 밤새 연설 원고를 외우면서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그가 실제로 보여준 연설은 여러모로 어색했고 힘도 없었다.

 ‘정치가 아베’는 역시 정치연설회에서 빛이 났다. 노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때로는 손을 번쩍 치겨들기도 했고, 때로는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자신이 지원하는 후보를 소개할 때는 이름을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연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강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과 공산당 등 남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정책과 이념이 다른 두 야당이 힘을 합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적을 공격할 때는 일국의 총리가 저래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거칠어졌다.

 어찌보면 화려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연설을 아무리 듣고 있어도 들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헌법 개정에 관한 말이 그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개헌구상’만 가득하고, 선거가 끝나면 개헌에 착수하려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유세에서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유세를 듣고 나면 ‘아베노믹스’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으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개헌을 이루고 싶다면, 개헌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지고, 개헌할 테니 밀어달라고도 말하게 된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한 언급은 철저하게 피했다. 개헌을 향한 그의 강한 집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는 개헌에 반감을 갖는 국민이 다수인 상황에서 개헌 반대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개헌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돌렸다. 개헌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개헌을 이루어내겠다는, 어쩌면 국민의 귀를 속이는 것일 수 있는 그의 전략은 결국 적중했다. 자민·공명 등 연립여당이 대승하면서 개헌세력이 참의원에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의 이런 귀속임·눈속임 전략이 통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전후 70년동안 일본을 지켜온 ‘평화헌법’을 한순간에 부숴버리겠다는 그의 구상을 일본 국민들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급해 그의 개헌의도에 신경쓰지 않았을 수 있지만, 개헌문제가 핵심 논제로 떠오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2018년 9월) 안에 ‘필생의 과업’인 개헌을 이루기 위해 나설 것이다. 아베 총리가 중·참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이끌어 개헌안을 발의할 수는 있지만, 헌법의 개정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다.

 아베 총리가 국민투표에서도 국민의 눈과 귀를 다시 다른 곳으로 돌리는 ‘트릭’을 쓸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아베’가 이번에는 또 어떤 수를 들고 나올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