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일본에서 인기 걸그룹 AKB48의 ‘총선거’가 열렸다. 이번 총선거에는 AKB48 뿐 아니라 후쿠오카(福岡)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HKT48 등 일본의 각 지역 자매그룹 멤버 272명이 입후보했다. 후지TV의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는 HKT48의 멤버인 사시하라 리노(指原莉乃·24)가 24만3011표를 획득,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AKB48이 8월에 내는 싱글 앨범 곡을 부를 멤버를 뽑기 위해 열린 이번 선거에서는 이 그룹의 기존 싱글 앨범을 구매한 팬들이 투표했다. 득표수 상위 16명에게는 싱글 곡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다.
걸그룹 AKB48의 ‘총선거’ 포스터
걸그룹 앨범의 노래를 부를 가수를 인기투표로 선정하는 데 대해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걸그룹이 소속된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팬들의 인기를 반영해 앨범을 내는 것은 하나의 마케팅 차원에서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번 ‘인기투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도쿄(東京)도지사 선거로 화제를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구 1300만명의 거대도시인 도쿄의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지사를 일종의 인기투표로 뽑아 오면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이후 도쿄도지사를 맡은 인사는 모두 4명인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아오시마 유키오(靑島行男),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등 3명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본의 유명 작가이다. 아오시마는 탤런트와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21일 지사직을 그만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는 도쿄대 교수 재직시부터 TV 프로그램의 해설자로 활약하면서 이름을 알린 유명인이다.
정치자금 유용 등의 문제로 사직한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
당선될 당시 선거고시 8~15일 전에 ‘깜짝 출마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경쟁 후보들이 일찌감치 출마의사를 표명하고 선거전에 나선데 비해 이들 4명은 모두 선거고시 직전에 출마 의사를 나타냈다. 이들은 결국 작가나 방송활동 등으로 쌓아올린 유명세를 내세워 짧은 시간 안에 표심을 휘어잡는 방법으로 거대 도시의 수장이 됐다. 유명인의 ‘깜짝출마’는 후보자의 능력이나 품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고,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유명인이 나오면 당선된다’는 그릇된 공식만 만들어버렸다.
AKB48의 인기투표와 비슷하게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는 결국 ‘최악의 지사’를 뽑는 결과를 낳았다. 2012년 말 ‘유명작가’의 명성을 바탕으로 선거고시 8일 전에 깜짝 출마했던 이노세 전 지사는 임기 2년여만에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낙마했다. 2014년 초 ‘약자를 위한 정치’를 내세우며 선거고시 9일 전에 출마선언을 했던 마스조에 지사 역시 임기를 절반만 채운 시점에 정치자금 의혹과 공사(公私)를 구분 못 한다는 비난 속에 지사직에서 내려왔다.
이들이 가져온 폐해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우선 선거 비용을 보자. 이들의 중도 사직으로 인해 추가로 실시하게 된 2차례의 선거비용만 100억엔(약1109억원)에 이른다. 도쿄도의 행정은 어떤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 준비나 보육시설 확충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마스조에 지사의 돈문제가 불거진 이후 도정은 사실상 멈춰 있다. 7월 31일 새 지사를 뽑기 위한 선거를 치르고, 새 지사가 업무를 파악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까지 도정 공백은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4년 후 도쿄올림픽 개최 직전에 도지사선거를 치러야하는 혼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새 지사를 뽑는 선거도 ‘인기투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선 가능성’을 중시하는 각 정당이 지명도를 중심으로 후보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계와 도쿄도민들이 걸그룹 인기투표같은 지사 선거를 또 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학습능력’을 발휘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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