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가족과 함께 국립도쿄신미술관에 다녀왔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 벨기에 출신)의 작품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그리트의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겨울비> 를 들 수 있다.
<겨울비>는 2005년 리노베이션 중이던 신세계 백화점 본관 외벽에 설치돼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의 작품은 당시 가로 150m, 세로 20m 규모의 알루미늄 판에 프린트되어 설치됐다. 1년 설치에 저작권료만 1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리노베이션 중이던 신세계 백화점 본관 외벽에 설치된 마그리트의 <겨울비>
마그리트 작품 전시장을 돌다가 우리 가족이 잠시 숨을 멈추게 되는 일이 하나 발생했다.
전시장을 돌고 있는데, 우리 가족 모두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겨울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보는 그림들이었는데, 그 중에 정말로 친숙한 이미지의 그림이 하나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입에서 동시에 "어~~이거~~"하는 비명이 나왔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작품과 이미지나 구성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난지 1년이 넘어 한국의 작품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서 그런지, 사실 나는 거의 똑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혹시 이거 보고 그린 거 아냐?"
가족의 송곳 질문이 나에게 쏟아졌다. 그도 그럴만하다.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은 15~16년전쯤 내가 직접 그린 유화 작품이다. 그림 한켠에 나의 사인은 들어가 있지만, 정식 제목도 없다. 거실 벽면 한 쪽을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큰 이 그림을 놓고 나는 '나무'라는 제목을 붙여봤을 뿐이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가족은 나를 째려보기까지 했다. '표절 가능성'이 높다는 눈초리다. 그동안 가족을 속인 것이 아니냐는 질책이 담겨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니야!"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 그림을 그릴 때는 마그리트라는 화가는 알지도 못했다. 나무와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바다와 나무가 들어간 사진을 찍은 다음, 그 이미지를 내 멋대로 해석해서 화폭에 담기를 좋아한다. 집에 걸어놓을 그림을 그릴 때는 집안의 이미지를 고려해 색을 정한다.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에 푸른 색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15~16년 전 어느 날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밤새 그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으로부터 표절의혹을 받게 됐다. 억울했다.
그날, 작가 신경숙이 생각났다.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작품에 대한 표절의혹이 제기된 이후 신경숙이 한 말이다. 이 말을 나에게 대입해 봤다.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마그리트의 작품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같았다. 하지만, 이후는 달랐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내 기억을 믿을 수 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아마추어 화가이지만, 내가 그림을 그리던 그날 의 상황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내 가족의 내 그림에 대한 최종 평가는?
"아빠는 '화가'로 나갔어야 하는데..., '기자' 말고..."
세계적인 화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놨다는, 우리 가족의 이 무식하고도, 사랑만 가득 담긴 평가는 그날 나를 하루 종일 행복하게 했다.
그러나,,,,다음의 두 작품을 여러분들께서 보신다면?
"말도 안돼! 화가는 아무나 하냐? 그리고 그림이 너무 달라!!"
아마추어 화가 윤희일의 작품 <나무>
세계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 작품 <전원>
<작품 도록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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