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느 회사 휴대전화인지 아십니까.”
지난해 12월17일 재일동포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듣기 위해 도쿄(東京)의 한 이자카야(일본식 술집)에서 만난 김모씨(52)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통신회사는 ‘소프트뱅크’였고, 휴대전화는 한국산이었다.
“많은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들이 저와 비슷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이니치가 소프트뱅크 휴대전화를 쓴다고 해서 특별히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닌데도 이걸 쓰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자이니치들의 마음을 여기서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30년 전 그는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원하는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지금의 회사에 취업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면접까지는 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 고비를 넘지 못했지요. 같은 대학을 나온 일본인들은 3~4개의 직장에 동시 합격해 ‘행복한 비명’을 지를 때였는데…”
그에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58)은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다. 손 회장이 거침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일처럼 기쁘다고도 했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오면서도 한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같은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를 통해 강한 자이니치, 일본인에 뒤지지 않는 자이니치의 힘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영웅으로 여기고 있는 손 회장은 그러나 법적으로는 ‘일본인’이다. 손 회장은 1990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손 회장의 귀화 과정은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여러가지 아픔으로 다가온다.
1957년 일본 규슈(九州)의 사가(佐賀)현에 있는 조선인 판자촌에서 태어난 손정의는 유치원 시절부터 ‘조센진’이라는 놀림 속에 살아오면서 한 때 자신의 국적을 숨기기도 했다. 국적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이던 상황을 피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그때까지 써오던 일본 이름을 버리고 ‘손(孫)’이란 한국 성(姓)이 들어간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권발급 문제 등 사업 관계상 한국적으로 살아가기에 번거로운 일이 너무 많았던 그는 1990년 일본으로 귀화를 결정했다. 그는 ‘편의상’ 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성을 고집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법무성)는 “‘손’이라는 일본 성은 없으니 귀화하려면 일본식으로 바꾸라”면서 한국 성으로의 귀화를 거부했다. 그는 묘수를 짜냈다. 일본인 아내의 성을 ‘손’으로 먼저 바꾼 뒤 아내의 바뀐 성을 근거로 자기 성을 ‘손’으로 유지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자신이 이미 일상생황에서 많은 불편과 한계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손 회장의 귀화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어떤 젊은 재일동포는 끝까지 한국 이름을 지켜낸 그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지금은 일본 최고의 기업인,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손 회장이 귀화를 선택한 이유는 ‘불편’과 ‘한계’ 때문이다. 현재 일본 법률상 한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투표도 할 수 없고, 정치가나 고위직 공무원도 될 수 없다.
현재 도쿄의 한 대학원에 재학 중인 만학도 송모씨(52)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원래 꿈은 정치가나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조선적’을 갖고 있는 그는 국적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 외교관 아니면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간 뒤 그는 자신의 국적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그 모든 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결국 꿈을 접었다.
재일동포들은 태생의 아픔을 딛고 일본 사회의 주류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세이카쿠인(聖學院)대학 강상중 교수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표시한다. 한국 국적과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본 최고의 대학인 도쿄(東京)대 교수를 거쳐 사립대학의 학장(총장)이 돼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인정받는 강 교수를 통해 재일동포들은 강한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차별과 편견이 현존하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이 ‘한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상당수 재일동포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스포츠나 연예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동안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밝힌 경우는 많지 않다.
법조계의 경우 국적의 한계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분야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조계로 진출한 재일동포가 대략 1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적이나 조선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재일동포들은 일상 생활에서 겪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귀화를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다. 2012년 12월 현재 한국적이나 조선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는 재일동포 수는 53만명에 이른다.
‘조선적’을 당당하게 유지한 채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는 부경자씨(72)는 “한국 전통 치마·저고리의 맥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의 국적을 그대로 지켜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지켜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씨는 “그동안 전통 한복을 바탕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한복 웨딩드레스가 요즘 일본 사람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한복과 국적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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