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구나, 아빠는 오늘 너를 떠난다.”
결혼 전날 밤, 딸은 아빠에게 편지를 남기려다 아빠의 노트북에 담긴 일기를 보게 된다. 첫 일기는 10년 전쯤 작성된 것이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딸은 가슴 한 편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아빠의 일기는 10년에 걸쳐 쓴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유서였다. 거기에는 온통 사랑이 넘쳐났다. 편지를 읽는 딸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2014년 12월 한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된 <십 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윤희일 지음,다산책방 펴냄)가 최근 중국, 대만 등에서 잇따라 번역 출판됐다.
이 책은 현재 한국, 중국, 대만 이외에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아시아지역 7개 나라 사람들이 '아빠의 자살'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놓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나 할 수 있을까?
한국, 대만, 중국에서 나온 이 세 권의 책. 내용과 지은이는 같지만 표지 디자인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원본과 중국의 번역본은 제목까지 다르다. 한국,대만,중국이 책 표지 디자인으로 펼친 '자살 삼국지'의 최종 승자는 어디일까?
한국에서 '다산책방'이 펴낸 원본에서는 한 켤레의 구두가 눈길을 끈다. 자살 현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 전에 신발을 벗어놓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옷은 그대로 입는 경우가 많지만, 신발은 벗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강이나 바다, 호수 등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경우에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 경우가 특히 많다.
마지막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이 여기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일까? 마지막 가는 길만은 잘 정리해 놓고 싶었던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언제나 곁에 있었던 아빠. 그러나 서서히 잊혀간 아빠.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아빠들의 삶인지도 모른다. 이땅의 아빠 중에서 자살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
한 켤레의 구두는 많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대만의 ‘열지문화’가 2017년 2월 번역 출판한 책의 제목은 <給十年後決心自殺的父親>이다. 한국 원본의 제목인 <십 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제목은 그대로 했지만, 표지디자인은 전혀 다르다.
아빠의 손으로 추정되는 어른의 손, 그 손의 끝을 잡고 매달려 있는 딸의 손. 딸의 결혼을 계기로 자살계획을 실행하려는 아빠와 아빠의 자살계획을 뒤늦게 알고 이를 말리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책 내용을 한 컷의 사진에 압축하고 있다. 제목 글씨도 위와 아래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자살과 이에 따른 헤어짐을 상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爸爸,我们永远不分离, 아빠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표지 디자인이 주는 느낌은 한국과 대만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헐렁한 바지를 입은 아빠, 그 옆에서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딸.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빠. 아빠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이때부터 자살계획이 구체화됐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 그리고 몰아닥치는 파도는 아마도 아빠가 견뎌내기에는 버거운 이 세상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6년 6월 중국에서 나온 이 책은 그 해말 중국의 교사와 전문가 등이 선정한 <올해의 영향력 있는 책 100권>에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 대형출판사인 ‘중앙편역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된 직후부터 인민일보 등 중국 내 여러 언론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아왔다. 인민일보는 당시‘<爸爸,我们永远不分离> 중국에 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이 책이 (중국)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고 전한 바 있다.
이 세 가지의 표지디자인이 최근 책을 출판한 다산북스(다산책방)의 매체에 소개된 뒤 한국 독자들의 평가가 나왔는데, 대만의 표지디자인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표지로 전개한 '자살 삼국지'의 최종 승자는 대만이라고 해도 될까요? 여러분의 평가는 어떠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국, 대만, 중국에서 자살을 생각한 아빠 여러분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나에게는 아직 아빠가 필요해…"
당신의 딸은 당신이 언제까지 곁에 있어주기를 원한다는 사실,
그 것만은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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