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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市立)서점'과 '서점동문(書店同門)'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하치노헤(八戶)시 중심가 빌딩의 1층에는 ‘하치노헤북센터’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차치노헤시가 설립·운영하는 서점입니다. 이름하여 ‘시영(市營)서점’입니다. 시의 예산을 투입하는 책방이라는 뜻이지요. ‘시립 서점’이라고 하는 편이 이해하기 편하겠군요.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 있는 시립서점 하치노헤북센터에서 어린이들이 책을 보고 있다.

 

이 서점에는 지역을 ‘책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고바야시 마코토(小林眞) 하치노헤 시장의 의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3선인 고바야시 시장의 꿈은 하치노헤를 ‘책의 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선거 공약에도 ‘책의 거리 하치노헤’를 내걸었습니다. 고바야시 시장은 “이 서점을 거점으로, 시민들이 책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강조합니다. 315㎡ 규모의 서점에서는 8000여권의 책을 팔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시가 시의 예산을 투입해 책방을 연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역시 동네서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인구가 23만4000여명인 하치노헤시에는 서점이 20곳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있는 서점도 만화나 잡지 등 잘 팔리는 책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는군요. 이대로라면 시민들의 ‘지식 편식’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고바야시 시장은 했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인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하치노헤북센터는 동네책방이 취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인문학이나 해외문학 관련 서적은 물론 예술, 자연과학 서적 등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의 역사를 담은 책을 비롯한 지역 인문학 서적도 적극적으로 취급합니다.

 

이 서점은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이나 책을 쓰는 사람을 위한 공간 등 여러 이벤트 공간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이 서점을 중심으로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민간 서점이나 도서관들과 연대해 책에 관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요. 

 

얼마전 저는 평생 잊지못할 ‘동문(同門)’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이순신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박종평씨(역사비평가,작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동갑내기인 그와 저는 태어나서 처음 만났습니다만, 젊은 시절 최소한 3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성장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자랐으며, 그 교문 앞에 있던 서점을 중심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작가 박종평씨의 책

 

서점 이름은 ‘명신서점’. 이른바 ‘뺑뺑이’의 장난 덕분에 코앞에 있는 학교를 놔두고 먼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닌 그는 시간만 나면 명신서점을 드나들면서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아니, 드나든 정도가 아니라 그 서점에서 살다시피했다고 합니다. 특히 서점 주인과의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역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책과 서점이 그를 역사비평가와 작가로 키워낸 것입니다.

 

명신서점, 저도 고교 3년 동안 거기서 양식을 얻었지요. 국내 작가의 소설에 푹 빠져있던 저는 서점에 새로 들어오는 소설책은 거의 다 사다가 읽었습니다. 당시 <현대문학>, <문학사상> 등의 문예지에 게재되는 소설은 늘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런 문예지들은 서점에 들어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맨 먼저 구입해 읽곤 했습니다. 책을 한 아름 사온 그날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군요.

 

‘서점동문’. 박 작가와 저를 이렇게 묶어봤습니다.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민들도 시립서점인 ‘하치노헤북센터’ 덕분에 ‘서점동문’이 될 수가 있겠네요.

 

서점이 자꾸만 없어지고 있어서 아쉽습니다만, 요즘 서점에 가보면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이번 주말에 서점 한 번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