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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이게 바로 '기억아파트'...'기억교실'은?

 

 

2005년 4월 25일 107명의 희생자를 낸 JR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현장.사고 당시 탈선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지진·화산·쓰나미·태풍 등 온갖 자연재해와 싸우는 것이 일상인 일본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오랜 세월 재해와의 투쟁 속에서 쌓아온 일본의 안전의식과 안전시스템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10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5년 4월의 JR후쿠치야마(福知山)선 열차 탈선 사고로 ‘안전대국 일본’의 신화는 무참하게 깨졌다.


 일본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JR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한지 만 10년이 지나고도 다시 몇 개월이 흐른 이달초 새로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사고 열차를 운행한 JR니시니혼(西日本)이 사고 당시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를 영구 보존하기 위한 공사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억’이라는 단어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한달쯤 지나 JR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사고 현장을 찾았다. 일본인들은 대형 사고를 겪고난 뒤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사고가 발생한지 9년이 지난 현장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텅빈 9층 아파트가 ‘사고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장에 보존돼 있었기 때문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지요.”

 

 당시 만난 JR니시니혼 관계자나, 사고 피해자 유족이나 텅빈 아파트를 그대로 보존하는 이유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잊지 않아야만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JR니시니혼은 2018년 여름까지 9층 아파트 중 4층 이상은 깎아내고 그 아래 부분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남겨지는 시설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대형 지붕을 덮는 공사도 한다.

 

 현장에는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헌화대와 위령비, 관리인과 경비원이 상주하는 관리동 등을 만들고 사고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전시물도 설치할 예정이다. 모두 사고의 기억을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나는 이 아파트에 ‘기억아파트’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한국의 ‘기억교실’ 논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 전까지 단원고 2학년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을 말한다. 참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고, ‘416교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사고 희생자 유족과 시민단체 등은 ‘기억교실’의 장기적인 보존책을 제시할 것을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기억교실을 지켜야 한다는 글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 안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참사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사고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한민국 어디선가는 ‘언제까지나 아픈 기억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다 잊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애써 외면해온 사람들, 사고의 책임에서 교묘하게 빠져나온 사람들, 그들은 다 잊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다 잊는다면, 그 엄청난 사고의 교훈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속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한발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제2, 제3의 세월호사고가 잇따르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다 잊고 다시 출발하는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다.

 “사고의 교훈을 결코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안전의 시작이지요.”

 

 JR열차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 10년 넘게 사고재발 방지를 위한 시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70대의 일본인이 강조한 것 역시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