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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본의 '본심'

 국제무대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일본의 집념은 끈질기다. 일본은 지난 15일 유엔 총회에서 2년 임기의 새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다.

 

 2016년 1월부터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 일본은 비상임이사국 최다 선출 공동 1위였던 브라질(10회)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보인 일본 정부에 대해 "부끄럽다"고 비판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중의원 의장. 고노 전 중의원 의장은 자민당 출신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 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사람이다. 

 

 일본이 노리는 것은 이 게 끝이 아니다. 일본은 최종적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해온 ‘기여’를 내세우면서 각국을 설득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투표 후 “일본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광범위한 도전에 맞서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본의 ‘본심’은 이 나라가 국제무대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본 정부는 난징대학살의 희생자가 30만명을 넘는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중국의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자 거의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중국 측에는 등재 신청의 취소를 요구했고, 유네스코를 향해서는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분담금 등에 대해 지급 정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유네스코에 내온 분담금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상의 협박으로 해석됐다. 일본은 유네스코 예산의 약 10%에 해당하는 연간 37억엔(약 346억원)을 부담해 왔다.

 평소 과격한 주장을 일삼아온 일부 우익 인사 또는 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언사가 일본 정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오자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의 한 신문은 “발언이 너무 난폭하다”고 지적했고, 다른 신문은 “아베 총리가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를 원한다고 해놓고 한편으로는 유엔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를 흔들고 있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어떤 대학 교수는 “‘돈을 안 내겠다’는 것은 너무 치졸하다. 이 정권은 국제기구의 분담금까지 정치 수단으로 하고 있다. 품위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출신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은 “부끄럽다”면서 “난징에서 학살이 있었던 것은 일·중 양국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언론과 학계는 물론 자민당 출신 인사로부터 비판이 쏟아졌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이 문제와 관련해 구성된 전문가회의는 지난 23일 “유네스코에 대한 분담금 지급을 중지하고 그 예산을 난징대학살 연구와 그에 대한 홍보에 써야 한다”는 문서를 만들어 총리에게 보내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자국이 국제무대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평화헌법’을 유지하면서 세계의 평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국제사회에의 기여’나 ‘평화에의 기여’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록 논란 과정에서 그동안의 ‘기여’는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스스로의 입을 통해 드러냈고, 집단적 자위권을 반영한 안보법을 통해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의 기여라는 명목 아래 내온 유네스코 분담금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전세계 어떤 나라도 일본을 지지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