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경운동연합 ‘자전거 타기 수기’ 공모-‘대상’ 수상작

                             

아직은 실패한 ‘자전거 해외유학’



**아직은 실패한 ‘자전거 해외유학’


‘자전거 해외유학’. 이런 말은 없습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녀왔습니다. 자전거 선진국으로 해외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최근 자전거 선진국 일본, 그중에서도 자전거이용자가 많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자전거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패’였습니다. ‘유학의 결과’가 실패였다는 얘기입니다. 저의 수기는 ‘실패한 자전거유학’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전거가 우리나라에서 교통수단으로 정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아빠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여겨 항상 이용해오던 자전거를 헌 신짝 버리듯 버린 우리 가족에게 먼저 이 수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딸과 아내가 자전거 타기를 꺼리게 만든 우리나라의 자전거 환경, 그리고 허위의식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자전거 박사’ 학위 따러 일본 진출


폭염이 최고조에 이른 8월 1일 저는 일본 도쿄로 ‘자전거유학’을 떠났습니다. 진짜냐구요. 물론 진짜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만을 배우러 일본에 갈 수가 있겠습니까. 몸은 회사 일로 일본에 발령을 받아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자전거 선진국에서 자전거 문화를 완전히 배워가자”. 그런 마음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특히 아빠의, 남편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거부해온 우리 가족들에게 자전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겠다는 나의 큰 꿈이 있었습니다.

온 가족을 ‘자전거 매니아’로 만들자. 그것은 저의 목표였습니다.



**자전거 6대 소유한 ‘자전거 재벌’ 되다

  -새 자전거 한 대, 중고 자전거 한 대, 이웃집에서 얻은 자전거 두 대, 외발 자전거 두 대


도쿄의 한 주택가 아파트에 거처를 정한 저의 첫 일은 자전거를 장만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에 자전거가 필수적이야”라며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강조해온 터라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습니다. 특히 도쿄의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전거물결’은 제 가족들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했습니다.


먼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을 40분 동안 걸어가 새 자전거 한 대를 마련했습니다. 귀국 후 한국으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으로 꽤 비싼 자전거를 샀습니다. 근처 중고자전거 매장에서 중고자전거를 한 대 더 샀습니다. 1개월 정도는 이 두 자전거에 딸을 한 명씩 태우고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웃집 아줌마로부터 자전거 2대를 얻었습니다.


두 딸은 일본 어린이들이 즐겨 타는 외발자전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옆집의 외발자전거를 빌려 연습을 하다가 아예 2대의 외발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
서커스에서나 보던 외발자전거의 주인이 된 딸들은 정말 부지런히 연습을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 혼자 서서 달릴 정도로 능숙해졌습니다.

한 집에 자전거 6대가 생기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자전거부대’의 신나는 도쿄생활


이로써 ‘자전거부대’는 ‘완편’됐습니다. 가족 4명의 자전거부대.

말 그대로 ‘부대’였습니다. 쇼핑을 가거나 외식을 하러갈 때는 네 가족이 길게 대열을 이뤄 거리를 누볐습니다. 4명의 가족은 항상 함께 움직였습니다. 맨 앞쪽은 엄마, 그 뒤로 작은 딸, 큰 딸, 맨 뒤는 저 본인.


자전거를 이용하는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돈을 절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쿄의 교통비는 정말 ‘살인적 수준’입니다. 자전거로 절약하는 돈이 월 3만엔(30만원)에 이른다는 아내의 분석도 나왔습니다.  


자전거로 30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갈 때는 늘 소풍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대한 공원에서 이국땅에서나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모두 자전거가 가져다준 행복이었습니다.


**‘자전거 경멸 가족’이 ‘자전거 애호 가족’ 되기


정말 신통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전거타기를 그렇게 거부하던 가족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자전거 애호가가 돼갔기 때문입니다.
두 딸은 일본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쇼핑을 하러 갈 때면 꼭 자전거를 찾았습니다. 아내는 집 앞의 편의점에 갈 때나, 강 건너 백화점에 갈 때나 자전거를 이용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탔던 사람들 같았습니다.


저희 가족 중 일본에 가기 전까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왕복 8킬로미터를 자전거로 통학한 경험이 있는 저는 자전거타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만 저의 가족은 자전거보다는 차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온 가족이 바로 ‘자전거애호가’가 됐을까.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나, 꼬부랑 할머니나, 신사복을 입은 아저씨나.

작은 딸의 일본인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 날이면 집 앞은 자전거로 만원이 됐습니다. 작은 딸의 생일 파티에 12명의 친구들이 왔는데 자전거가 무려 10대나 왔더군요.

한마디로 도쿄 사람들은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랍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자전거를 안타고 배기겠습니까.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자전거타기


여기서 잠깐, ‘예술’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비 오는 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면서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 그녀들을 보면 감탄사와 함께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곤 했습니다.

아는 일본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가능 합니까”

일본인 대답. “10년만 매일 타보세요. 누구나 돼요”


1년 뒤. 우리 가족들도 상당한 경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면서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내는 10킬로그램짜리 쌀을 자전거 앞뒤에 실은 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운전할 만큼 실력이 늘었습니다. 두 딸은 또 양손을 놓고 코너를 돌 줄 알게 됐습니다.







**자전거시설에 놀라고


일본의 자전거 시설은 얼핏 보면 보잘 것 없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아스콘으로 울긋불긋 포장된 자전거도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자전거 이용자들은 인도를 주로 이용합니다. 인도도 한국에 비해 좁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왜 편리한지 아십니까. 자전거를 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이 제거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와 차도의 턱은 어김없이 ‘종이 한 장 이하의 높이’로 낮춰져 있습니다. 멋진 자전거도로를 만들어놓고도 높은 턱을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은 한국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자전거도로(인도)를 가로막는 자동차는 정말로 단 한대도 없습니다. 단연코 없습니다. 불법주차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인도를 차가 막아 자전거 통행에 불편을 느낀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보행자들은 앞이나 뒤에서 자전거가 오면 어김없이 비켜줍니다. 

사람과 차로 가로 막힌 우리나라의 자전거도로와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자전거에 놀라고


일본의 자전거는 참 촌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자전거에는 바구니가 달려있습니다. 여성용이나 남성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려면 짐을 손쉽게 넣을 수 있는 바구니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헤드라이트와 벨이 달려있습니다. 모두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헤드라이트는 야간 운행 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차량들이 자전거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합니다. 생명과 직결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헤드라이트를 자전거의 안전에 가장 필수적인 장치로 꼽습니다.

일본의 자전거는 꼭 우리나라의 70년대 자전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전거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자전거는 산악용자전거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주 세련돼 보이지요. 바구니는 물론 짐받이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드라이트가 달린 자전거를 찾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데는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보급되는 대부분의 자전거는 레저용 성격이 짙습니다. 이러니 자전거의 교통수단화가 쉽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아주 세련됐지만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는 어려운 자전거, 그게 바로 한국의 자전거지요.


**말짱 도루묵, ‘자전거 안 타는 가족’


저는 3대의 자전거를 이삿짐에 넣고 다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타자” 

가족들은 처음에는 ‘찬성’쪽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자전거로 쇼핑에 나섰던 아내는 인도를 가로막는 차와 엉터리 시설 때문에 짐을 싣고는 도저히 자전거를 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걸어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먼저 자전거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두 딸에게 통학용으로 자전거를 강력히 권했습니다. 그러나 반발이 거셌습니다.

딸들은 “우리동네에서 여자애가 자전거타고 학교 가는 거 봤냐”며 절대 못 타겠다고 했습니다. 큰 딸에게 자전거통학을 강력히 권했지만 “자전거통학을 하는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자전거가 촌스럽게 생겨 창피하다는 것도 자전거통학을 거부한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던 자전거가 한국에 오니 창피하다고 하니 정말 답답했습니다.

 
결국 요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일본에 가기 전과 상황이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요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외지 출장이 없는 날에는 자전거로 출근을 합니다. 혼자 쇼핑을 가거나 볼일을 볼 때도 일본에서 타던 그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1년간의 자전거 해외유학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촌스런 자전거’를 타자.


나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실용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겉멋이 강조된 산악자전거 형태의 자전거를 실용적인 자전거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짐받이나 바구니가 없는 자전거는 일상생활의 교통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되려면 짐을 쉽게 싣고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야간 안전을 위해서는 헤드라이트가 필수적인데 우리나라의 자전거는 대부분 장착돼 있지 않습니다.

바구니, 짐받이, 헤드라이트, 벨 등이 달린 ‘아줌마자전거’를 타야만 자전거가 생활 속에 정착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자.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 중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젊은 여성이나 여학생들을 보고 와서 ‘일본 여자들은 참 헤프다’는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해석이 어디 있습니까. 속옷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자전거를 탄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 전철을 타듯이 자전거를 탈 뿐인 것입니다. 그들은 복장에 관계없이 자전거를 이용할 정도로 자전거가 일상화돼있는 것입니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양복을 입었다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자전거는 언제 탈 수 있겠습니까.

‘점잖은 체면에 어떻게 양복 입고 자전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전거는 여전히 애들의 놀이기구로 머무를 것입니다.


**꿈


저의 꿈은 우리 가족이 다시 ‘자전거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두 딸은 자전거로 학교에 다니고, 아내는 자전거로 쇼핑과 마실을 가고, 저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완벽한 자전거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4대의 자전거에 나눠 타고 강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싶습니다. 큰 딸 자전거의 바구니에는 도시락을 싣고, 작은 딸 자전거의 바구니에는 과자와 음료수를 싣고, 제 자전거의 짐받이에는 돗자리와 운동도구를 싣고, 아내의 자전거 바구니에는 사랑을 싣고...... 

저의 작지만 소중한 이 꿈의 실현을 위해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가족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화하고 설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정말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탈 것입니다.

언젠가는 아빠의 ‘외로운 자전거 행로’에 우리 가족들도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내 딸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 딸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 딸 친구의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 딸 친구의 동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대전 시민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우리 국민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경향신문 전국부 
윤  희  일

Posted by 타슈타슈 타슈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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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0.06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자전거 생활은 언니나, 두 딸들이나 다 포기했군요
    저희는 지금도 주말에는 자전거 타고 다녀요.
    대전은 그래도 훨 낫지 않나요, 여건이?
    저희 동네에선... 자전거 한번 타려면 거의 전쟁... ㅠ.ㅠ

    선배 생각에 증말증말 공감하고요.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게 있어요.
    제가 보기에 일본에서는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원칙이 철저한 것 같습니다.
    자동차>오토바이>자전거>사람
    그래서 센 것들은 교통약자를 무조건 배려.
    자전거가 가면 사람들이 비켜주는 건 그냥 '예의'차원인 것 같았고요,
    자전거들이 사람이 앞에 있으면 딱 멈추고 무시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해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자동차를 무조건 배려...
    거리에선 보행자>자전거>오토바이>자전거의 배려 우선 원칙이 잘 지켜진달까요.

    그런데 울나라에선...
    선배가 얘기한 대로, 싸이클 선수같은 씽씽족들이 자전거 타고 엄청 달리면서
    '생활형 자전거(장바구니 달린 아줌마 자전거;;)' 탄 사람은 무시하고,
    특히 서울 강변 고수부지에서 자전거 타면 저랑 제 아이는 열받아서 죽을 지경이예요.
    싸이클족들이, 애 델꼬 나와 꾸물럭거린다고 욕하고 눈치 주고...
    정말 위험하게, 앞에 사람 있으면 따르릉 울리고 엄청 쌩쌩거리며 지나가고.
    예의 없는 자동차 문화를 자전거로 그대로 반복하더라고요.

    빨리 달리고 싶으면 자동차를 타란 말이다!
    여기는 공원이지 경륜장이 아니란 말야!!!

    지난주에도 잔뜩 열받고 왔습니다 -_- (아, 생각하니 다시 열받네)

    아 글고, 선배, 글 올리실 때에 이미지를 꼭! 하나씩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