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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특집

김치, 떡볶이, 족발...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 르포

 “‘조센진이 사는 쓰루하시(鶴橋)역 근처는 위험한 곳이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전철 안에서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제 집이 바로 쓰루하시역 근처였는데…. 그 역에서 도저히 내릴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한 두역 더 가서 내린 뒤 집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편견과 차별이 있었습니다.”

 

 

일본  오사카(大阪)시 이쿠노(生野)구에 있는 ‘코리아타운’. 지난 16일 오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재일동포 상인과 일본인 손님들로 북적였다. 200여개의 상점 가운데 80% 정도는 재일동포가 운영한다.


 지난해 12월15일 오후 일본 오사카(大阪)시 이쿠노(生野)구 코리아타운 인근의 한 강당. 코리아타운으로 체험학습을 온 인근 도시의 중학생 190여명 앞에서 김광민씨(43·코리아 NGO센터 사무국장)는 자신이 중학교 시절 겪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코리아타운을 직접 보고, 체험하고 싶다며 이렇게 방문해줄 정도로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과 저희들 사이에 벽은 없습니다. 서로 대화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봤듯이 코리아타운은 미국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스튜디오같은 놀이시설이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서 맛있는 한국 요리도 즐기고 할머니, 아줌마들과 어울려 주세요.”

 재일동포 3세인 김씨가 능숙한 오사카 사투리로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앞으로 더욱 친하게 어울리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 풀어놓자, 박수가 쏟아졌다. 강당을 나오는 김씨나, 일본인 중학생들이나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이날 코리아타운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수많은 편견과 차별, 노골적인 괴롭힘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그들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김치를 버무리고, 족발을 삶고 있었다.

 그들의 꿈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 그리고 다른 수많은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아무런 꺼리낌도, 차별도, 편견도 없이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의 문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등 연간 150여개 기관·단체에서 코리아타운을 체험하고 싶다며 찾아옵니다. 연간 8000~9000명에 이르는 일본인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코리아타운을 보고 싶다면서, 저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찾아오고 있는 거죠.”(코리아NGO센터 인권연수담당 강계아·44)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어울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코리아 NGO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이 체험프로그램은 코리아타운의 수많은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30년 넘게 코리아타운을 지키고 있는 최옥씨(61). 직접 김치를 담가 팔고 있는 그는 김치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찾아준 일본인 손님들에게 맛있는 푸짐한 덤을 얹어주는 재미로 살아간다고 했다.

 

 지난해 12월17일 다시 찾은 코리아타운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아침부터 부산했다.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청사초롱과 기와집 모양의 간판 때문에 이곳이 일본 땅이라는 사실을 잊게 했다. 200여개의 상점 가운데 80% 이상은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이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박했고, 그들의 꿈은 단순했다.

 ‘나카요시(仲良し·사이좋음).’

 그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친하게 지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에게 있어 두 나라는 뿌리이고, 터전이고, 존재의 이유다. 그들에게 한국과 일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둘 다 껴안고 살아가야하는 운명공동체 같은 것이다.

 

 

재일동포들은 물론 일본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 중인 떡볶이와 김밥


 배추에 시뻘건 김치속을 넣고 있던 최옥씨(61)는 30여년 동안 코리아타운 생활을 하면서 상처 투성이가 된 손을 보여줬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우리의 맛있는 김치를 맛보게 하고 싶어서 손해를 보면서도 덤을 듬뿍 줄 때가 많다”고 했다. 재일동포 2세인 남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코리아타운을 찾아온 일본인 초·중·고생들에게 700엔(약 7000원)어치 김치를 200엔(약2000원)이나 300엔(약3000원)에 내주면서 “맛있게 먹고 또 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서다.

 

 

여기를 어찌 일본 오사카라고 할 수 있으랴? 한국의 어느 한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오카사 코리아타운의 포장마차.


 밤새 삶은 족발을 판매대에 늘어놓고 있던 재일동포 2세 박영희씨(59)는 “재일동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외교관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최고 인기 상품은 역시 김치. 한 상인이 16일 새벽에 담근 김치를 꺼내보이고 있다.


 한 재일동포는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쌓아온 것들(한·일 친선)이 일부 정치인들의 가벼운 처신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는 정말로 눈물이 나곤 한다”고 말을 거들었다. 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김치가게를 운영하는 김동규씨(36)는 “한국과 일본이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 담그는 그 모습은 한국이나 오카사나 똑같다. 물론 김치의 맛도,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의 마음도 똑같다.

 

 거리에는 우산을 든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그들 역시 한국과 일본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김치를 사러 나왔다는 무라나카 요시에(村中淑惠·41)는 “코리아타운의 분위기와 이곳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 자주 나온다”며 “여기에서는 한국인(재일동포)과 일본인 사이의 벽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지금보다 더욱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요즘 상황이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