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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10.23/‘역사지우기’ 총공세에 나선 일본

 지난 8월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사 중 일부가 오보였다고 인정하면서 역사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어떤 신문은 이것을 ‘역사전(歷史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신문의 표현대로 이것이 전쟁이라면, 이번 전쟁은 일본 쪽의 공격으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위안부 논쟁에서 수비에 치중하던 일본이 이번에는 공격으로 돌아선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른바 ‘요시다 증언’을 바탕으로 쓴 위안부 관련 기사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관련 기사를 취소했다. 이 기사의 취소와 후쿠시마(福島)원전  관련 일부 기사의 오보사태가 겹치면서 아사히신문은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요즘 일본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아사히는 ‘신문’이 아니라 일본을 팔아먹은 ‘매국노’나 ‘국적(國敵)’이 돼 있다. 지하철을 타면 아사히신문을 ‘국적’ 등으로 비판하는 잡지 광고가 수도 없이 나붙어 있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사히신문을 갑자기 ‘국적’으로 만들어버린 ‘요시다 증언’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사냥하듯’ 잡아들여 위안부로 보냈다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가, 증언에 대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 기사를 취소했다. 아사히신문의 입장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요시다의 주장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아사히의 기사 취소를 계기로 공세로 돌아선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요즘 일본에서 제기되고 있는 위안부 관련 주장을 요약하면 ‘아사히신문이 기사를 취소했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위안부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식의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주장이 일부 언론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일본 정부와 정치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 지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서 최근 삭제했다. 일본 외무성은 ‘아시아여성기금’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 모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기 위해 1995년 7월18일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을 홈페이지의 ‘역사인식’ 코너에 게시해오다 최근 이 글을 지웠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과거 발언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난 21일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권고한 유엔 보고서(쿠마라스와미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철회할 것을 작성자인 스리랑카 법률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전 보고관에게 요구하기까지 했다.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명기한 자국의 국어(일본어)사전의 기술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일본은 이처럼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를 빌미로 자국 국민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머릿속에서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과 같은 제반 문제들을 지워버리거나 덮어버리려 하고 있지만, 한국은 일본 언론들끼리 벌이는 ‘집안싸움’ 취급을 하면서 마냥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국내·외의 객관적인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해 정부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고 이를 근거로 세계를 향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세계인들의 머릿 속에서 ‘위안부’ 또는 ‘성노예’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엄습한다.

 

 일본의 공세가 워낙 거센데다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