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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10.02/오키나와 독립론

오키나와(沖繩)는 1972년 5월15일 이전까지 일본 땅이 아니었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국 땅이었다. 지난달 오키나와에서 만난 지바(千葉) 출신 여성은 1973년 오키나와 남성과 결혼하기 전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오고갈 때 여권을 가지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일본과 미국이 이곳을 지배하기 이전, 오키나와는 ‘류큐(琉球)왕국’(1429~1879년)이었다.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풍습을 갖고 있는 엄연한 독립국가였던 것이다.


 최근 이 오키나와에서 ‘독립’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은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진행될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 중 상당수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 오키나와 주민은 “진심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기원했다”고 했다. 그는 “본토에 비해 각종 차별을 받고 있는 오키나와의 상황이 스코틀랜드가 처한 현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키나와에서 독립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본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각종 사건·사고에 시달려온 주민들 중 일부는 ‘그 옛날 류큐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곤 했다. 오래전부터 오키나와에서만 통용되는 ‘이자카야 독립론’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식 대중주점인 이자카야에서 한 잔 마시면서 나누는 독립 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술 한 잔 마신 김에, 아니면 홧김에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독립하는 게 낫겠다”는 식으로 떠드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제대로 된 논리나 근거가 있을리 없다. 상대적인 불평등, 상대적인 박탈감 등에서 나온 감정적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자카야 독립 토론장’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미군기지 문제이다. 상당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땅에 일본내 미군기지의 73.8%가 밀집해 있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논리를 편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기노완(宜野灣)시의 후텐마(普天間)기지를 헤노코(邊野古)해안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기습적으로 추진하고 나서면서 오키나와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만난 한 현지 주민은 “오키나와를 독립시킨다면 미군기지를 다 내보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오키나와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부 주민들은 만일 독립을 하게 된다면, 관광지 이외에 이렇다할 자원이 없는 오키나와의 지역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하기도 한다.

 요즘 오키나와 독립론은 단순한 ‘이자카야 논쟁’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오키나와 일대의 학자·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류큐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를 결성, 오키나와 독립의 의미와 가능성 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이 학회의 일부 관계자는 ‘독립의 꿈’이 좌절된 스코틀랜드를 방문, 사례연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발족한 이 학회는 등록회원이 최근 2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학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언론을 통해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이후 경제적으로 풍족해 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했으며, 미군기지만 몰려들었다”면서 “이제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키나와 주민의 1인당 소득은 도쿄(東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도쿄 등 대도시는 요즘 구인난으로 난리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구직난이 심각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남아있는 이런 응어리와 숙원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미군기지 이전 등의 중대 사업이 주민 의사에 반해 강행된다면, 스코틀랜드에서와 같은 거센 독립요구도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는 알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