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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2014.07.17/일본 언론의 아전인수식 여론조사

2014.07.17

 

 온 가족이 잔치를 앞두고 커다란 가마솥에 국을 끓이고 있다. 가족들은 가장 맛있는 국을 손님들에게 내놓기 위해 간을 보기로 했다. 평상시 짠 국을 좋아하는 아빠는 아직 간이 제대로 배지 않은 건더기 하나를 집에 가족들에게 먹여보인 뒤 ‘국이 너무 싱거우니 소금을 더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짠 맛을 싫어하는 딸은 엄마가 직전에 소금을 듬뿍 뿌린 부분의 국물을 떠다가 가족들에게 먹여보이고 ‘국이 너무 짜니 물을 더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헌법에 대한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함으로써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한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에 찬성하는 논조를 보이고 있는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5월30일부터 6월1일 사이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반대’ 의사를 나타낸 응답자는 24%에 불과했다. 비슷한 논조인 산케이신문이 지난달 28~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3.7%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33.3%에 그쳤다. 이들 언론의 조사 결과만 보면 다수의 일본 국민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똑같은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른 언론의 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하게 밝혀온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5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찬성은 32%에 그쳤다. 같은 논조의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56%, 찬성 28%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여론조사 결과가 양분된 결정적인 이유는 질문지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요미우리와 산케이의 여론 조사는 ‘반대’, ‘필요 최소한도 내에서의 찬성’, ‘찬성’ 등 3가지 중에서 고르도록 한 뒤 ‘찬성’과 ‘필요 최소한도 내에서의 찬성’이라는 응답을 ‘찬성’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마이니치와 아사히는 ‘찬성’과 ‘반대’ 등 2개의 선택지만 제시하고 조사를 실시했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상당수 응답자들이 ‘반대’를 선택하게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의 예에서 아빠와 딸의 ‘의도된’ 맛보기는 잔칫상을 책임지고 있는 엄마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일본 언론의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중대사에 대한 일본 국민과 정부의 향후 의사 결정에 혼란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모집단’에서 ‘표본’을 어떻게 추출하는가와 설문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표본은 모집단의 특성을 가능한 그대로 반영해야 하고, 설문지는 표본으로 선정된 조사대상자들의 의사를 최대한 그대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경우 여론조사의 적중률은 실로 놀랍다. 3억 인구의 미국에서 단지 1000~2000명의 표본만 골라 조사를 해도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될 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여론조사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 언론의 표본추출 과정이나 설문지 작성 과정에 실제로 어떤 의도와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상당수 일본 국민들이 이런 결과를 ‘논조에 맞춘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최근 의미있는 분석 결과가 하나 나와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도쿄신문은 일본 전국의 42개 주요 지방신문 가운데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찬성 논조를 보인 신문은 3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39개 신문은 반대 논조를 보였다고 분석했다.